[추적] 이명박‧박근혜 사면 시나리오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새 원내대표로 취임한 주호영 의원, 야당의 새 원내대표 김태년 의원이 첫 오찬회동을 가졌다.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난 것은 지난 2018년 11월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상설협의체 회의 이후 566일 만이다. 이번 회담에 앞서 보수와 진보 양측 진영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사면 여부가 논의될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수년이 흘렀지만 두 전 대통령의 사면은 여전히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는 이슈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사면했던 YS 전례 있어
‘광복절 특사’ 앞두고 고심 깊어질 듯

이번 오찬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지난 27일 통합당에 따르면 주호영 원내대표는 오찬 회동에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거듭 역설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6일 원내부대표단 회의와 중진 당선인 회동에서 대통령 사면 의제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주 원내대표 역시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행사 참석을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문 대통령이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 나가는 일에 성큼 나서 주었으면 한다”고 적은 바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찬 회동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지 않아 사면 요건이 되지 않는데다, 자칫 ‘구걸’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 원내대표는 첫 만남 시 “날씨가 좋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문 대통령이 “예. 반짝반짝”이라고 화답하자 김 원내대표가 “날씨처럼 대화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주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가 ‘다 가져간다’ 얘기만 안 하시면”이라고 말을 받았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겠다고 주장한 것을 지적한 발언이다. 실제로 이날 주 원내대표는 공격적인 질문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예상보다 회동이 길어지면서 예정의 2배가 넘는 2시간 36분이나 진행됐다. 주 원내대표는 먼저 문 대통령에게 3차 추경과 관련된 질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3번이나 추경해야 하는 상황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인가. 어느 항목에 추경이 필요하고 어떤 효과가 있으며, 재원 대책은 어떻게 되는지 국민이 상세히 알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국회가 추경을 주어진 회기 안에 충실하게 심사 하는 게 아니라, 정치현안으로 시간을 보내다 회기 마치기 직전에야 부랴부랴 예결위를 열어 통과시키지 않았나”라고 반문하며 “추경에 대해 충분한 답변을 요구한다면 정부도 철저히 준비할 것이다. 어쨌든 결정을 신속히 내려달라”고 답변했다.
주 원내대표는 또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서 “많은 국민이 공수처를 검찰 통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야당이 추천하게 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위원 2명은 법 제정 과정에서 야당에게 비토권을 준 것으로, 2명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점을 지켜 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주변 특수 관계자, 즉 측근도 대상인데 검찰 견제수단으로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뜻은 대통령 주변의 측근 권력형 비리를 막자는 취지다”라고 대답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문제에 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주 원내대표는 “이 정권이 (한·일) 합의를 무력화하고, 3년째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보상과 관련해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고, 윤미향 사건도 나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해 문제해결이 되지 않았다”면서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과 사전에 (내용을) 공유했으면 받아 들였을 수도 있는데 일방적이었다. 위로금 지급 식으로 정부 스스로 합의 취지를 퇴색케 한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라고 대응했다.
주 원내대표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 “희생이 있는 분들이 손해를 전적으로 감당하게 하는 건 맞지 않다”면서 “거점병원이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한 분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코로나19 사태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처우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수치나 자료로 드러난 부분이 있다면 정부가 다 책임지고 보상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외에도 주 원내대표는 신한울 3·4호기에 투입된 7000억 원의 자금 문제 등을 거론했다. 오찬 말미에는 “특임장관 시절, 정부 입법 통과율이 4배로 올라갔다”면서 “야당 의원의 경우 청와대 관계자와 만나는 건 조심스럽지만, 정무장관이 있으면 만나기 편하다”며 정무장관 신설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의논해 보라”라며 검토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 원내대표는 직접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이 주 원내대표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 이야기를 꺼내며 “국회의원 시절 국방위원회 동기였는데 합리적인 면을 많이 봤다”는 덕담을 먼저 건넸다. 문 대통령은 또 “여야 간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문제들은 이제 한 페이지를 넘겼으면 좋겠다”라면서 “앞으로 정기적으로 만나서 현안 있으면 현안 이야기하고 현안 없더라도 만나서 정국을 이야기 하는 게 중요하다. 20대 국회도 협치와 통합을 표방했으나 실제론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협치 조건으로 미래통합당 측이 결국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97년 12월2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조치를 통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12.12 군 쿠데타에 참여했던 인물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린 바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탄핵 정국 이후 극단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민심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야권 내부적으로는 보수 결집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요구는 극우 세력의 입장으로 치부됐지만, 어쨌든 주 원내대표가 이를 공론화함으로써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세력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에서도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에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의상 국회의장은 지난 21일 퇴임 간담회에서 “과감히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적기”라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 역시 “국민들 사이에서 (사면)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짓자는 공론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여당에서도 두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어서 실제 사면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적잖은 진통이 예고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간 오찬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부글 통해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통합당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며 “저는 반대한다.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 아니라 다시 확산할지 모르는 코로나19 전쟁에서 이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 설훈 의원 역시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사면을 하려면 형이 확정이 돼야 한다”면서 “형 확정이 첫째이고 그리고 사면 받는 사람들이 반성하고 그리고 사과를 해야 한다. 해야 되는데 지금 형도 확정이 안 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년형이 지금 돼서 대법원에 계류 중일 거다. 박근혜 대통령도 형이 확정 안 됐다. 그래서 형 확정이 안 된 상태에서 사면하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안 맞는다”고 반대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두 번째로 두 분이 무죄 주장을 하고 있다. 나 잘못된 거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건 뭐 이건 사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면하려면 내가 잘못했다. 반성한다. 이게 전제가 돼야 상식 아니겠느냐. 우리가 과거 사례가 있다. 전두환 씨에 대해서 사면을 했다. 그건 참 잘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면이 좋긴 좋다. 법적으로도 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해야 된다. 그런데 잘못하게 되면 국민 통합이 아니고 국민 분열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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