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큰딸 “있을 수 없는 일” 거액 양육비 소송···‘구하라법’ 재추진 목소리↑

구하라 씨 오빠인 구호인 씨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서영교 의원과 함께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구하라 씨 오빠인 구호인 씨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서영교 의원과 함께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32년 만에 나타난 엄마는 숨진 딸의 유족급여를 받아갔다. 아버지와 큰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액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냈다. 이는 일명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라 불리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19 구조대원 일하다 PTSD우울증 얻어 극단 선택한 딸

유족급여퇴직금유족연금까지 타 갔다···오는 7월 선고 주목

이혼 이후 연락도 없었던 어머니가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를 받아간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라 불린다.

숨진 소방관의 아버지와 큰딸은 “딸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돈을 받아갔다”며 분개했다. 또 거액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냈다.

“장례식에 오지도 않고

뻔뻔하게 돈 받아갔다”

최근 전북지역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주에 사는 A(63)씨는 지난 1월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전 부인 B(65)씨를 상대로 양육비 1억8950만 원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B씨와 이혼한 후부터 두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50만 원씩 계산해 양육비를 청구했다.

이 소송은 앞서 수도권에 위치한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지난해 1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숨진 둘째 딸은 119 구조대원으로 일하면서 수백 건의 구조 과정에서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A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친모인 B씨에게도 이러한 사실이 통보됐다. B씨는 본인의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숨진 둘째 딸 퇴직금 등 약 8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사망할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 원도 받게 됐다. 이미 수개월분은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내용을 인지하고, 지난 1월 B씨를 상대로 거액의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제기했다. 미성년자인 자녀에 대해 부모 모두 부양 의무가 있고,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양육비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A씨는 B씨가 1988년 이혼 이후 단 한 차례도 가족을 만나지 않았고, 둘째 딸의 장례식장에도 찾아오지 않았다며 퇴직금‧유족급여를 나눠 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혼 당시 아이들의 나이는 5살, 2살이었다.

또 두 딸을 키우는 동안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는 등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 시점 이후 매달 50만 원씩으로 두 딸에 대한 양육비를 합산해 B씨에게 청구했다.

친모 “아이들 내버려두지 않아”

큰딸 “친모 주장 거짓”

그러나 B씨는 법원에 낸 답변서를 통해 “양육비 청구는 부당하다. 당시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내버려둔 사실이 없고, 전 남편이 집에서 쫓아내다시피 하며 나와 아이들의 물리적 접촉을 막았다”고 반박했다.

또 “이혼 후 친모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이를 시기하는 전 남편이 딸들에게 해를 가할 것을 우려해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며 “대신 친정어머니로 하여금 두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 집을 얻어 살며 딸들의 안위를 살피도록 했다. 딸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으며 큰딸이 갖게 된 적개심은 전 남편의 험담에 의해 심어진 잘못된 인식 탓”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이혼 이후 딸들 앞으로 매달 1만 원씩 수년간 든 청약통장 사본, 현직 목사로서 지역주민을 위해 선행을 베푼 주변인의 탄원서를 근거 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딸은 B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진술했다. 법정에서 큰딸은 “생모는 동생이 떠난 뒤 단 한 번도 어디에 안치됐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면서 “생모라는 사람은 목사라는 직업을 앞세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고 반박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양육 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유산 상속 권한을 온전히 보장받는 것은 현행 국내 사법 제도의 크나 큰 맹점”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른바 ‘구하라법’이 21대 국회에서는 꼭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론 ‘분개’

21대 국회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전북판 구하라’가 재현된 사건이라며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또 ‘구하라법’ 추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모양새다.

구하라법은 앞서 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한 뒤 20여 년 전 집을 떠난 친모가 나타나 구 씨가 남긴 재산의 절반을 요구하자 친오빠 구호인 씨가 지난 3월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한 어머니는 상속 자격이 없다”며 국회에 입법 청원을 올린 건이다.

가족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에만 유산 상속 결격 사유를 인정하는 현행 민법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자’를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구하라법은 사실상 폐기됐다.

이 입법청원은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로 넘겨졌으나, ‘계속 심사’ 결론이 나면서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회의인 지난달 20일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서 불발된 것이다.

이에 구 씨의 오빠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하라법이 만들어져도 우리 가족은 적용받지 못하지만, 평생을 슬프고 아프게 살아갔던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21대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현행 민법을 고려해 배우자 없이 사망한 구 씨의 상속권자는 친부모가 된다. 재산을 친부와 친모가 각각 절반씩 상속받는다. 앞서 친부는 자신의 몫을 구 씨 오빠에게 양도했다.

구 씨 오빠는 현재 친모의 상속권보다 자식들의 성장에 도움을 줬던 아버지의 기여분을 우선으로 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구 씨 유산 논란에 이어 전북판 구하라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부양 의무를 외면한 부모가 자녀 유산을 받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덩달아 구하라법 재추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구하라법이 통과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전북판 구하라 사건’은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심리로 재판과 조정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고는 오는 7월경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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