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영이 우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었다. 선량하기만 해 보이는 남편이 사실은 범죄자였다. 그것도 살인을 한 우석은 그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즐거움이라도 되는 양 일기장에 그 과정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그 치밀한 범죄의 구성 그리고 완벽한 집행. 조여 오는 경찰의 수사망을 여유 있게 농락한 모든 과정이 그 일기장 안에 빼곡히 적혀 있다.

순영은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그 일기장을 펴 본다. 믿을 수 없는 마음이 자꾸만 그 일기장을 펼치게 한다.

죽은 이는 우석을 지겹게 쫓아다니던 여자였다. 이름은 일란. 살해장소는 서해안의 작은 해수욕장이다. 이미 10년 전의 일이다. 우석은 일란을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섬으로 인도해 갔다.

건너갈 때는 썰물 때여서 아무 문제 없이 건너갈 수가 있었다. 한적한 곳에서 둘은 낭만적인 사랑을 속삭였다. 우석의 입장에서 노리는 바가 있어 시간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고 일란에게는 시간을 돌이킬 여유를 주어서는 안 되었다.

순영은 다시 일기장을 덮었다. 읽을 때마다 이 대목에서 분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살인자에게 느껴지는 질투라니…. 여자란 정말 어쩔 수가 없어.

여자는 물에 빠져 조난을 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기장에는 살인 방법에 대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이 없었다. 우석은 곁에 있었으나 물속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기가 쉽지 않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로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잡아당기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려다가 죽기도 일쑤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으로만 처리되었다. 하지만 건너갈 때는 걸어서 간 사람이 어떻게 조난을 당할 수 있었을까?

경찰은 좀 더 뒤에 등장한다. 일란의 아버지는 다이아몬드 거래를 하는 국제 오퍼상이다. 그는 일란이 서해로 떠나던 즈음에 5캐럿이나 되는 물방울 다이아가 금고에서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용의자로 우석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슨 증거가 있을 수 있을까?

증거로 남을 것은 다이아몬드뿐이다. 그러나 그 다이아는 어디에든 숨겨놓을 수 있다. 그만큼 크기가 작으니까.

우석은 다이아를 계란 속에다가 숨겨 놓았다. 계란을 삶아서 껍질을 두 쪽 낸 다음 그 안에 다이아를 넣고는 접착제를 사용해 교묘히 원상 복구를 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한 줄의 진짜 계란과 더불어 냉장고의 계란판 위에 올려져 있었다. 경찰은 우석이 집을 비운 틈에 철저히 검사를 시작해 버터 속까지도 뒤져보았지만 계란을 깨 볼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그 다이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순영이 이 대목에서 물욕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에게 속삭인다. 갖겠다는 것이 아니고 물방울 다이아라는 것,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하다는 차원이라고.

일기장에 적혀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일기 자체도 여기서 그만이었다. 그 이후로는 양심에 찔려서 적지를 못한 것일까? 아니면?

순영은 우석과 중매결혼을 했다. 우석의 과거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거나 한 적은 없다. 그는 건실한 보험회사 직원이었고 그 옛날의 일기장을 펼쳐 보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남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수영을 잘하는지도 몰랐다. 남편의 과거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면 K대 국문과를 나왔고 한때는 소설가를 지망했다는 것 정도였다. 아마도 남편 역시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아내가 경영학과를 나왔고 동아리 생활로 연극반에 있었다는 정도나 알까? 사실 둘이 만나 대화가 통한 것은 문학적인 이야기들에서였다.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네, 아니네 하는 따위의.

그녀는 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날로 우석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름 휴가를 서해안의 그 해수욕장으로 가자고 졸랐다.

“어라, 거기를 어떻게 알지?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한 번 갔던 곳인데.”
우석은 의외로 좋아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대학 4학년 때일 리가 없었다. 일기장에는 그보다 1년 뒤로 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나를 속이는군. 순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순영은 휴가를 떠나며 조금씩 일기장에 나와 있는 일들을 거론했다. 물방울 다이야 이야기라든가 물에 빠진 사람 등의 행동 양태라든가.

그러나 우석은 그런 이야기에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은 이미 우석에게는 사라진 과거일 따름인 것 같았다. 순영은 방법을 바꿨다. 괴기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원혼이 되어 되돌아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번에는 우석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순영은 일의 가닥을 잡을 수가 있었다. 바닷가에는 일기에 나온 작은 바위섬이 정말로 버티고 있었다. 그 섬을 본 순간 순영은 아뜩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억지로 입을 떼었다.
“여보, 저 섬은 정말 멋져 보여요. 저기로 놀러 가봐요.” 우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기에는 깊은 소가 있어서 안 돼. 밀물이 되면 아주 위험하다고.”
“그럼 저기서 빠져 죽은 사람도 있나요?” “있을지도 모르지.”
우석은 여전히 태연했다. 양심이라고는 애당초 갖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순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남편에게 죄의식을 돌이킬 방법은 하나뿐이다. 순영은 남편 몰래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갔다. 마침 일이 되느라 도착한 첫날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에이, 장마철이니까 1주일 뒤에 오자고 그랬잖아.” 우석이 투덜댔다.
“비치 가운을 밖에 걸어 놓았어요.” 순영은 호들갑을 떨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즉시 그녀는 준비해 둔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산발을 만들었다.

물감으로 입가에 핏자국까지 내니 그럴 듯 한 귀신이 되었다. 그녀는 방안으로 옷자락을 펄럭이며 뛰어들었다. “헉, 누구요?” 우석이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네 손에 죽은 일란이다. 네놈이 다시 이곳을 찾다니, 천벌이 두렵지 않았더냐?”

우석은 이미 넋이 반쯤 나갔다. “네가 죽은 건 내 탓이 아니야. 그건⋯” 우석은 스스로 트릭을 밝혔다

 

퀴즈. 그 방법은?

 

[답변-3탄] 우석은 일란과 사랑을 나누며 시간을 유심히 살폈다. 밀물이 되기를 기다렸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우석은 그 점을 이용하여 조난을 연출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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