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유출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는 말에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제어센터에서도 이상이 감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상 가동 중입니다.”

“인테이크 쪽 회전 스크린에 이상 물체는 없었나요?”
김승식 부장이 조민석 보안과장을 향해 물었다.
“죽은 물고기가 좀 걸려 있을 뿐 이물질은 없었습니다.”

회전 스크린이란 취수구 쪽의 이물질을 걸러내는 장치였다. 가장 바깥 쪽에 스톱 로그, 그 다음에 스크린 바, 또 그 다음에 촘촘한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지상과 수중을 돌면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회전 스크린이 물속에서 지상에 올라왔을 때는 육안, 또는 감지 카메라로 그 안에 있는 조그만 이물질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어부들이 촘촘한 그물로 바다 속에서 잔고기를 걷어 올리는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

“애애앵-”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수원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쾌속정 두 척이 발전소 앞 바다에 들어왔다.

수원은 멀리 수평선 쪽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처럼 수상해 보이는 요트는 없었다.
“해경이군. 폭발이 더 있나 보려는 것인가?”
누군가가 혼잣말을 했다.

“한수원 차장님.”
조민석 보안 과장이 수원을 불렀다. 수원은 대답 대신 돌아섰다.
“조금 있으면 해운대 경찰서 수사팀이 올 겁니다. 같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주영준 차장님도요.”

수원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밖으로 나왔다.
폭발이 일어난 제2발전소 취수구 앞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폭발 장소 바로 앞에 해양경찰청 배 두  척이 떠 있었다.
“지금 뭘 조사하는 거예요?”

수원이 안면 있는 청원경찰을 보고 물었다,
“무인 탐색기를 내려 보내 물속을 살피고 있는 중입니다.”
“무인 탐색기요?”

수원이 의문을 표하자 청경이 다시 설명했다.
“또 폭발할지 모르니까 사람 대신 기계를 내려 보내는 거죠.”
수원은 지난 월요일 확대간부회의 때 들었던 보고가 생각났다. 분명 장 안토니오의 시체를 건진 뒤에 취수구를 점검했다고 했다. 그때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때는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인가?’
수원은 귀신에 홀리듯 머리가 멍해졌다.
날이 어두워지자 비상 조명 차 여러 대가 몰려와서 사고 현장을 대낮처럼 밝혔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폭발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 왔는지 주영준 차장이 수원의 곁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폭발물이 더 없대요?”

“예. 피해도 별로 없답니다. 스톱 로그 두 개가 약간 휘었을 뿐이랍니다.”
“그때 안토니오가 폭발물을 설치한 것일까요?”
“설치한 게 아니라 사건 당일에 엉겁결에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설치를 했다면 그 후 점검할 때 발견됐을 겁니다.”
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수원의 질문에 한참 생각을 고르던 영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자로를 폭파시켜 방사능 유출을 기도했거나.”
“또 하나는요?”

“저런 정도로 원자로의 격납고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도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라늄 연료나 폐연료봉 감시 장치를 파괴시키고 플루토늄을 훔치려 했거나.”
“감시 장치라면 IAEA 감시 카메라 말인가요?”
“그렇죠.”

핵연료와 폐연료봉이 저장된 곳에는 IAEA가 설치한 24시간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었다. 
“청색경보를 백색경보로 낮추겠습니다.”
김용소 발전부장이 화상 스크린을 통해 서울에 있는 본부장한테 사건 보고를 하고 있었다.

“백색경보! 백색경보!”
곧이어 방송과 함께 경광등이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비상 대책실에 와서 상황을 파악한 경찰 수사팀은 수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중요한 수사 단서를 제공해 주셨더군요. 저는 해운대 경찰서 문동언 경위입니다.”
이마가 조금 까지고 입이 넙죽한 점퍼 차림의 수사관이 수원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문제의 리모컨으로 폭발물을 터뜨린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수원은 민망했다.

“한수원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수원은 주영준 차장, 조민석 보안과장과 함께 해운대 경찰서로 갔다.
“밤중이라서 대접할 게 별로 없습니다.”

문동언 경위는 손수 자판기에서 커피 석 잔을 빼왔다.
수원은 오늘 겪었던 일을 빠짐없이 자세히 진술했다. 문 경위는 비닐봉지에 든 리모컨을 책상 위에 꺼내 놓고 물었다.

“이것을 만진 사람은 한 차장님 말고 또 있습니까?”
“제가 만졌습니다. 김용소 발전부장님과 김승식 보안부장님도 만졌고요.”
수원 대신 영준이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거 참. 지문을 떠 보려고 있더니. 한 차장님, 다른 번호는 눌러 보지 않으셨죠?”
“한두 숫자를 눌러보기는 했는데 연속적으로 누르기는 87452가 처음이었어요.”

“누르자마자 폭발했습니까?”
“시간 차는 잘 모르겠는데 곧이어 폭발 소리가 들린 것 같아요.”
“쪽지에 있는 글자 A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게 있나요?”
“안토니오 낚시클럽의 약자가 아닐까요? 아니면...”
수원이 주저하자 문 경위가 다잡아 물었다.
“아니면요?”

“원자라는 영어의 Atomic일수도 있고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것도 아니라면요?”
“아나톨리의 이니셜이기도 하지요.”
“아나톨리라니요?”

문동언 경위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네. 장 안토니오가 갖고 있던  지도 뒤에 적혀 있는 단어 중 하나지요.”
“그래요? 그런 것이 있었나?”
문동언 경위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아나톨리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 게 있었나...”

수사팀은 그 단어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조선 빌라 호텔에서 입수한 명단을 좀 설명해 주시지요.”
그것에 대해서는 수원도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화면을 보고 외운 인적 사항만 말해 주었다.

이런 저런 문답이 끝나갈 무렵, 수원이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장 안토니오가 왜 원전을 폭파하려고 했을까요?”
문동언 경위가 고개를 갸웃 하다가 답했다. [계속]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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