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과로사 논란, 변화는 ‘글쎄’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과로사(過勞死). 과로로 인해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질병에 대한 저항능력이 떨어져 사망에 이르는 죽음의 원인을 일컫는 용어다. 그리고 대한민국 직장인들 사이에서 과로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초고속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과로사가 있었고, 여전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과로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안타까운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업무량이 증가한 공무원과 물류 업계, 의료계에서는 과로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덮은 과로사의 그늘을 추적해본다.

쿠팡 물류센터서도 40대 계약직 사망
코로나19 사태 속 간호사들 “두렵다”

지난달 22일 전주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하다 숨진 시 소속 40대 공무원 故 신창섭 주무관에 대해 정부가 순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주시는 “인사혁신처가 최근 열린 공무원 재해보상심의회에서 전주시 총무과 소속 故 신 주무관의 순직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1시 11분경 완산구 효자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신 주무관은 아내의 신고로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2시경 숨을 거뒀다. 당시 신 주무관의 아내는 경찰 조사에서 “책을 읽다가 남편이 있는 방에 가 봤더니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신 주무관은 지난 2009년 1월 공직에 입문한 이후 전주시 자치행정과와 총무과 등에서 근무했다. 지난 2014년에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망 당시에는 총무계 소속으로 복무 관리와 청사 방호, 각종 행정 지원 등의 업무를 맡았다. 신 주무관은 사망 일주일 전인 2월 20일 전주에서 전북 지역 두 번째 확진자가 나온 뒤 전주시 전체가 코로나19 비상 체제로 바뀌면서 주말을 포함해 매일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능동감시 대상자 모니터링과 총괄대책본부 구성 및 운영 등의 업무를 했다. 신 주무관은 비상근무체제가 시작된 뒤 아내에게 “코로나19 때문에 업무가 늘어 힘들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주무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고인을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며 순직을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순직과는 별개로 가장을 잃은 가족의 슬픔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파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대한민국을 긴장케 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가 원인이었다. 파주시 소속의 故 정승재 주무관은 ASF가 국내에 번지기 시작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방역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ASF가 발병한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말까지 정 주무관이 근무한 총 근로시간은 월 387시간에 달한다. 이는 OECD 월평균 160시간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주말과 휴일에도 집에 가지 못한 채 ASF 차단을 위해 사투를 벌인 고인의 노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파주시 역시 고인에 대한 순직 인정을 위해 현재 공무원연금공단에 병원진료 기록 등이 포함된 사망 경위조사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코로나19
쓰러지는 공무원들

순직 등의 제도가 없는 사기업 소속 근로자의 노동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지난달 4일 오전 6시경 광주광역시에서는 지역 모 택배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 A씨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확인됐다. 전국택배노동조합 호남지부 측은 A씨 죽음의 원인이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같은 달 6일 노조는 광주 남구 모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 노동자가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다 사망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A씨는 최근 3개월간 코로나19로 인해 배송물량이 증가하며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월평균 배달 물량은 7~8천개 수준인데, 최근 3개월간은 평균 1만여 개의 택배를 배송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A씨가) 수수료를 많이 받기 위해 무임금 분류 작업 후 9시간 배송 업무까지 날마다 14~15시간 노동을 하다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 측이 택배 노동자의 수수료(임금)를 결정하는 택배 물량을 담보로 택배 노동자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서 “물량이 증가하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회사 측은 무대응·무대책으로 일관하며 모든 책임을 택배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쿠팡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데 이어 인천 물류센터에서는 40대 계약직 근로자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기 때문이다. 숨진 B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2시 40분경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 물류센터 4층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인천시당은 논평을 내고 “B씨의 죽음은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과 코로나19로 인한 업무의 과도한 증가 때문에 발생한 과로사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당에 따르면 B씨는 정규직원이 아닌 3교대 계약직 노동자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근무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B씨가 사망한 인천 물류센터를 포함해 인천 지역 쿠팡 사업장에서는 매주 1명이 이상 다치거나 몸이 상한 근로자가 나왔다고 당은 강조했다. 실제로 미래통합당 민경욱 전 의원이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인천 지역 부상 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인천 지역 쿠팡 사업장에서 발생한 ‘3일 이상 휴업’ 산업 재해는 모두 339건에 달했다. 이 수치는 동기 인천 지역 전체 산업 재해 8천365건의 4%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쿠팡 사업장에서 35세 미만의 청년이 당한 산업 재해는 모두 174건으로, 인천 전체 청년 산업 재해의 11.6%(1502건) 수준이다. 당은 “쿠팡은 ‘로켓배송’의 편리함을 혁신이라고 포장하지만, 과로사를 낳는 노동환경은 퇴보일 뿐”이라면서 “로켓배송과 코로나19 이면에는 3개월짜리, 1주일짜리, 하루짜리 단기 계약직 노동자들이 막대한 유통 물량을 감당해야 하는 노동환경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벌어진 쿠팡 물류센터 발 코로나19 확산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확진자 조사나 방역뿐 아니라 이런 단기계약직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한 노동환경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방역 최일선’ 간호사들 “코로나보다 과로사가 더 두려워”

과로에 시달리는 것은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간호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강원도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C씨는 기자에게 “처음에는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웠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몰려드는 검진 환자에 눈 코 뜰 새 없이 일하다보니 ‘아 내가 코로나가 아니라 과로로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방호복을 입는 것부터 상당히 힘들다”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 사명감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D씨도 “말해 뭐하겠느냐. 너무 힘들다”며 “가장 두려운 건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약이 있으면 버티겠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사실 몸 상태가 한계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몇몇 코로나19 전담병원의 간호사들은 밀려드는 환자를 견디다 못 해 사직서를 내거나, 무단결근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 역시 과중한 업무량에 졸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과로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과로사’ 여전한데…
정부, 특별연장근로 확대 추진?

이처럼 과로사 위험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특별연장근로(인가연장근로) 확대를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위축된 수출산업 활성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규제의 빗장을 풀면 과로사 사례가 증가함은 물론, 주52시간 상한제가 무력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코로나19 돌발상황과 업무량 폭증에 따른 특별연장근로 허가 일수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규정에서는 특별연장근로가 1년에 최대 90일을 넘을 수 없게 돼 있는데, 그 이상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발되자 올해 1월 특별연장근로 사유를 확대한 바 있다. 기존 사유에는 자연재해와 재난,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을 위한 경우에만 특별연장근로가 인정됐지만 사유 확대로 ▲인명보호 ▲돌발상황 수습 ▲업무량 폭증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이 추가됐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특별연장근로 신청이 크게 늘어났다. 지난 1일을 기준으로 1142개 업체가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았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가 조만간 특별연장근로 한도 90일을 넘기게 된다. 이에 따라 업체에서는 노동부 측에 특별연장근로 연장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측은 특별연장근로를 90일에서 더 늘리는 방안과 상반기 특별연장근로를 90일에 포함하지 않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연장근로는 이번에 한해 한시적으로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연장의 맛’을 본 업체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진 뒤에도 지속적인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칫 규제가 풀릴 경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대한민국의 과로사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