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목 편집위원
김현목 편집위원

예견된 대로 국회는 원구성이 지연되고 있다. 총선 때 여야가 입만 열면 언급했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앞다투어 내세웠던 새 정치 약속이 무색할 정도다. 상임위원장직 배분을 두고는 서로가 겁박하며 네 탓 공방만 벌인다. 조금이라도 불리한 주장이 나오면 득달같이 상대당을 할켜 댄다. 법사위원장을 두고는 눈곱만큼도 양보할 기색이 없다.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으르렁대기 일쑤다. 급기야 의석수를 내세운 거대여당에서 상임위원장 싹쓸이 발언까지 나오는가 하면, 총선 참패로 초라해진 야당은 여전히 구태스럽게 반발하고 있다. 원내 구성원이 절반가량이나 바뀌었지만 행태는 이전 그대로다. 국민 눈에는 그저 볼썽사나울 뿐이다.

지난달 여야는 상임위원장 배분비율을 11대 7로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어떤 상임위원장을 배분할 것인지를 두고는 여전히 동상이몽이다.

특히 법사위원장은 여야 모두 뺏겨서는 안 되는 노른자로 인식해 왔다. 이는 법사위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흔히 법사위는 양원제를 시행하는 상원에 비유되곤 한다. 상원은 하원의 법안을 거부할 권한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친 법률안을 다룬다. 체계와 자구 심사로 전체 입법과정을 흔들어 대고, 때때로 극한 대치 정국을 조성하기도 한다. 

현행 국회법 36조는 법사위의 소관업무를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원·군사법원을 다루는 한편 탄핵소추에 관한 사항 이외에 법률안·국회 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회법 86조에서도 ‘위윈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한 때에는 법제사법위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소관 업무 때문에라도 여야가 쉽게 양보하기 어렵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매번 원구성 협상을 할 때마다 법사위원장을 두고 강하게 부딪치고 쟁탈전을 벌이는 이유다. 여야는 그 폐해를 서로 인식하고 있다. 아마도 알면서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한 법률안을 법사위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치도록 한 제도는 제2대 국회(1951.3)에서 도입되었다.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은 헌법의 규정에 적합하면서도 다른 법률과의 균형을 맞추면서 당초 입법 취지와 목적을 달성하여야 한다.

부실 입법 논란과 위헌 판결 등이 종종 나오는 걸 보면 그만큼 체계와 자구 심사 기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걸러내는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 법사위가 권한을 남용해 법률안 전체 내용까지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월권행위였지만 관행상 묵인돼 왔다.

국회의안편람에 의하면 ‘체계의 심사’란 법률안 내용의 위헌 여부, 관련 법률과의 저촉 여부, 균형유지 여부, 자체 조항 간의 모순 유무를 심사하는 동시에 법률 형식을 정비하는 것이고, ‘자구의 심사’란 법규의 정확성, 용어의 적합성과 통일성 등을 심사하여 각 법률 간에 용어의 통일을 기함으로써 법률용어를 정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체계와 자구의 심사에 한정하고 법률안의 정책적 내용까지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는 없다. 그동안 법사위에 부여된 권한은 취지와는 달리 악용돼 왔다. 식물국회·동물국회 연출의 주 무대가 법사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안을 다뤄 보거나 입법 과정을 접해 본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법사위의 폐해를 실감했을 것이다. 권한을 남용해 발목잡기 도구로 삼아 왔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마치 본회의로 가는 길목에 부비 트랩을 설치한 것과 같은 형국이다. 잦은 법률안 심사 지연 방지를 위해 심사기간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2012년 5월에 국회법 개정으로 도입된 안건신속처리(Fast track)) 제도가 법사위의 지연 전술과 발목잡기 행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법사위의 체계와 자구 심사 권한의 폐해가 심각한 이상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 입법 과정의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 혹평을 들었던 20대 국회와 닮은꼴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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