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당대표 출마, 내 경력 도움 되나 문 대통령이 정할 문제다.”지난 2018년 6월 말 김부겸 행안부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 당권 경쟁이 막 불 붙을 무렵이다. 당시 김 장관은 당권 유력주자로 거론됐다. 그가 장관을 그만두고 당대표에 출마한다면 이해찬 대표는 출마 뜻을 철회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침묵했고, 김 장관 전당대회 출마는 끝내 무산됐다.

김 장관 당 대표 출마는 ‘신의 한 수’로 거론됐다. 그는 보수 정당에서 이적한 독수리 5형제 중 한 사람이다. 당연히 당내 기반이 취약했다. 그는 범 진보 핵심 지지층인 젊은층, 호남, 진보 이념 성향에서 약점이 있었다. 그가 민주당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선 꼭 넘어야 할 산이었다. 지난 총선 당선 여부도 불투명했다. 그가 당대표가 된다면 선거 지휘 때문에 비례대표 출마나 불출마 여지도 열려 있었다. 2년 전 우려는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그리고 과감한 선택과 추진력이 문제라는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이번엔 달랐다. 김부겸 전 의원이 당권 도전을 공식화한 것이다. 당초 대선으로 직행할 것이란 전망이 다수였다. 의외의 선택을 한 셈이다. 사실 그에겐 당권 도전이 외길수순이나 마찬가지다. 김 전 의원은 원외에 머물고 있어 언론 조명이 많지 않다. 당내 대선주자 적합도에서도 중하위권이다. 게다가 당권까지 멀어진다면 민주당 대선후보는 더욱 더 힘들어진다.

김 전 의원이 당권 도전을 공식화하면서 미묘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우선 당대표 경쟁에서 이낙연 의원 독주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 의원은 당내 당권주자 교통정리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권 출마가 유력했던 송영길 의원은 이 의원이 출마하게 되면 불출마 뜻을 피력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 추대론도 나왔다. 얼마 전에는 김 전 의원과 정세균 국무총리 당권 연대설도 불거졌다. 두 사람은 부인했지만 김 전 의원에겐 나쁠 것이 없었다. 언론의 김 전 의원 조명도 부쩍 늘었다.

당권 경쟁이 가열되자 내부에서 이 의원 전대 출마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3일 당내 최대 규모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 정례회의에서 참석자 30여 명 중 20여 명이 대권주자 전대 조기 등판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더미래는 추가 논의를 거쳐 이 의원 등에게 ‘전대 출마 재고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다. 자칫 이 의원 독주로 싱겁게 끝날 뻔했던 당권 경쟁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이 의원과 함께 전대 출마 길이 막히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되는 셈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9개월 전쯤 1위로 부상했다. 영남후보론이란 확실한 무기도 있었다. 문 대통령도 2012년과 2017년 대선을 6개월∼1년 남겨두고 1위를 꿰찼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적통 계승자였다. 이 의원은 거의 1년째 여야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아직 ‘이낙연 정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선까지는 1년 8개월 이상 남아 시간도 넉넉하다.

김 전 의원은 장점도 많다. 그는 수도권을 떠나 대구에서 당선한 유일한 민주당 정치인이다. TK 확장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그의 이미지는 미래지향적이다. 풍부한 정치경험,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소통도 장점이다. 김 전 의원 당권 도전 공식화가 이 의원 독주 구도를 깨고 여권 차기 구도를 재편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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