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세뇌교육 26년 받은 KAL 김현희도 8일 만에 전향시킨 ‘진실’의 힘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일명 ‘삐라(ビラ·Bill)’라고 불리는 ‘대북(對北) 전단’이 北 김정은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모양이다. 北 김정은의 ‘입’ 역할을 하고 있는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여정은 지난 4일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담화문을 냈다. 그런데 北 김여정의 신경질에 우리 정부가 고개를 숙이며 체면을 구겼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대북 전단 살포는)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고 발언했고, 통일부도 ‘대북 전단 살포’를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행위”라고 규정짓기까지 했다. 마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셈이다.
-국정원 분석관 “‘4·27’, ‘9·19’ 명분용인 ‘삐라’…그 대가는 ‘자유’”
정보기관 등에 따르면 전단을 통한 ‘선전(Propaganda)’은 ‘공작(Operation)’ 활동의 전통적인 한 형태다. ‘백색·회색·흑색 선전’ 활동은 일부 정보활동의 기초가 되는 행위로, 장기적으로 자국의 안보를 위한 초석이 된다. 다만, 이는 국가정보기관만이 수행할 수 있다. 최근 민간 단체 대표의 전단 살포는 ‘정보기관이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다.
앞서 박상학(52)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지난달 31일 경기도 김포에서 일명 ‘삐라(ビラ·Bill)’ 등의 대북(對北) 전단을 살포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나름 ‘테크로크라트(기술관료)’ 과정을 밟던 그는 지난 1997년 황장엽 망명 이후 탈북했는데, 북한 보위부에 발각돼 약혼녀와 가족들이 숙청당했다. 결국 그는 북한인권운동 전면에 나섰다. 그가 보낸 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그런데 北 김정은의 ‘입’인 北 김여정은 지난 4일 담화문을 내고 탈북민들을 향해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이라며 맹비난했다. 대북전단을 살포한 단체 회원들은 탈북민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국민’이다. 북한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 “쓰레기”라고 비난한 것이다. 이어 北 김여정은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다”며 우리 정부로 화살을 돌렸다. 즉, 왜 전단 살포를 막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 당국이 혹독하게 치르는 수밖에 없다”며 “남측 조치가 없을 경우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쓸모없이 버림받고 있는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있어야 시끄럽기밖에 더하지 않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 둬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지만, 왜 北 김정은의 여동생이 직접 나서서 ‘대북 전단’을 맹렬히 비난했을까. 바로 이 점이 ‘조선노동당의 가장 아픈 부분’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요서울이 국가정보원 북한분석관과 북한인권 운동단체를 통해 ‘대북 전단’의 위력과 대남(對南) 비난 의도를 알아봤다.
국정원 북한분석관 “‘삐라’ 없애라는 北…자유 민주적 가치 정면 도전”
일요서울은 지난 4일 오후 북한군 234부대 정치지도원 군관이었던 최정훈(51) 자유수호연합 대표와의 통화에서 “대북 전단의 효과는 엄청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북한에 90v의 적은 전력으로도 영상 시청이 가능한 ‘노트텔(노트북 형태의 DVD 등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8000대를 투입시킨 ‘정보 유입’의 숨은 주역이다.
최 대표는 이날 일요서울에 “북한 주민들은 北 김정은을 살아 있는 유일신(唯一神)으로 믿게끔 평생에 걸친 세뇌 교육을 받는다”며 “맹목적 존경심을 강요받다가 처음 진실에 맞딱뜨리면 누구나 인식의 혼란을 겪지만 결국 실상을 알게 되면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대북 전단’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987년 11월 KAL 858기를 폭파했던 당시 북한 공작원 김현희 역시 18년간의 세뇌교육과 8년간의 밀봉교육으로 무장했지만,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나서 불과 8일 만에 北 김일성에 대한 증오로 태도를 ‘전향’했다. ‘진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보 유입’의 위력을 알고 있는 최 대표는 이날 일요서울에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는 북한에 편지 등을 비롯한 전단을 보내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며 “우리나라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의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통해 옭아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에서 30년간 북한분석관으로 근무했던 곽길섭(60) 前 분석관도 4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대북 전단의 효력에 대해 평가절하하는데, 실제로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엄청난 물건”이라며 “北 김여정이 직접 나서서 ‘삐라’를 막으라는 취지의 비난 성명에 나선 것을 보면 그만큼 엄청난 ‘체제 위협’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곽 분석관은 “이번에 북한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를 거론하면서 우리 정부가 대북 전단을 막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은, 체제 위협의 핵심인 대북 전단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즉, 단계적으로 북한 체제 강화를 위한 명분을 쌓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어 곽 분석관은 “문재인 정부가 현재 ‘남북 협력’ 등을 내세워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걸 빌미로 삼아 재갈을 물리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며 “이것은 결국 무력 도발을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바로 ‘무력 도발의 명분’인 것이다.
곽 분석관은 이날 최 대표가 걱정했던 ‘표현의 자유’가 말살될 공산이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앞서 통일부는 이날 대북 전달 살포에 대해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로 낙인을 찍었다. 이에 대해 곽 분석관은 “이번 정부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두고 흥정하는 것 같은 위험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표현 및 언론 자유·인권 존중’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가치를 절대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는 “전체주의자들과의 협상에서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양보한 그 대가는 결국 국민들이 자유를 잃게 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한편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긴장 조성으로 이어진 사례에 주목해서 여러 차례 전단 살포 중단에 대한 조치를 취해왔다”며 “정부는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대북 전단 살포 관련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바로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옥죄려고 하는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가 위법 행위였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법원 “‘대북 전단 살포’ 제재, 위헌(違憲) 소지 있다”
앞서 지난 2015년 의정부지방법원 제30민사부(재판장 이관용)는 현재 문재인 청와대 민정비서관인 이광철 변호사를 비롯한 11명의 변호사들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려는 박상학 대표를 저지할 목적으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 처리했다(사건 2015카합18).
당시 신청자들은 ‘북한 지도부·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단파라디오 등이 들어 있는 풍선을 살포하는 행위, 이에 필요한 장비를 지역으로 반입하는 행위, 이에 대한 기자회견 및 공표 행위’에 대해 1회당 200만 원의 위반금을 요구하는 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할 수도 있는 표현 행위를 한 사람에게 그러한 표현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 있다는 논리에 이를 수도 있는바, 이는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의 행사가 위축될 우려가 다분하다”고 판단했다. 즉,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제재’는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북 전단 살포’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일명 ‘표현이 자유’와도 연결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입법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반영된 ‘대북 전단 살포’를 제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었다. 곽길섭 국가정보원 前 북한분석관과 최정훈 자유수호연합 대표의 걱정이 현실화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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