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정치적 의미의 공화국(共和國)의 어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찾을 수 있다. 서주(西周)의 군주였던 여왕(?王)이 방탕한 생활로 쫓겨나자 재상이던 주공(周公)과 중신인 소공(召公)이 서로 합의하여 공동으로 정무를 본 데서 나온 말이 ‘공화’였고, 현대에서는 그렇게 다스려지는 나라를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 공화국의 역사는 고대 로마의 공화정에서 시작한다. 물론 현대적 의미의 공화정과는 다르지만,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치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대의정치를 기본으로 했던 점에서는 현대 공화정과 맥을 같이한다. 이렇듯 공화정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정만큼이나 그 뿌리가 깊다고 할 것이다.

고대 공화정 이후에 근대적 의미의 공화국은 18세기 후반 미국에서 나타난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임기가 있는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고, 의회를 통해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며, 사법기관을 통해 국가 조직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민주공화국 제도를 완성시켰다. 미국과 같이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대의정치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공화국을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정식 국호(國號)다. 미국의 민주공화국과는 다르게 북한의 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중심의 정치체제이다. 우리가 북한의 정치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권세습이니 독재국가니 하면서 북한을 비판하는 이유는 인민공화국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독재적으로 통치행위를 하는 국가임에도 미국형 공화국으로 오독(誤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국호에 왕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오독 문제 없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다.

지난 4월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한창 제기되던 때에 김정은보다 더 주목받았던 사람은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이었다. 김정은 유고시의 권력을 승계할 인물로 삼촌인 김평일, 친형인 김정철, 조카인 김한솔 등의 이름이 간간히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김여정의 이름이 압도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북한의 권력서열과는 상관없이 권력승계 1순위라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여정이 최근 노동신문에 게재된 담화에서 우리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우리 정부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다면, 개성공업지구 완전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9.19 군사합의 파기에 나설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습니다.”라며, ‘전단 살포 중지’는 지난 2018년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북전단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안보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에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현빈 주연의 영화 ‘공조’에서의 남북공조보다 더 물샐 틈 없는 남북공조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 정부는 통일보다 안보를, 국민의 생명을 더 우선하는 정부인데, 대북전단 살포라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의 행위’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지혜를 짜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분단국가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 권력자의 메시지에 반응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응이 너무 빨라서 놀랍고, 너무 명쾌해서 더 놀랍다.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북한 관련 이슈는 선거의 행방을 좌우할 큰 이슈이다. ‘통일포기선언’이라도 하는 후보가 나온다면 ‘통일대박’ 못지않은 ‘대박 이슈’가 아닐까? 국민 보호가 통일보다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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