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국회에 찾아왔다. 그 후배와는 20대 국회에서 모 중진 의원실에 같이 근무했다. 9급 비서였는데 헌칠한 데다 성격도 유순해서 다들 좋아했다. 상임위 정책과 의원 수행을 병행하던 친구였는데 안타깝게도 21대 국회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 헤헤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이 실직자 후배에게 차마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지 못했다.

“실업급여 대기자가 천 명이래요.” 실업급여 신청을 하려고 고용센터에 갔더니 아직 국회에서 퇴직처리가 안 되어 있더란다. 국회사무처에 전화했더니 20대 국회 보좌진 중 자동면직 대상자가 1,000명이 넘는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란다. 물경 1,000명 넘는 보좌진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국회를 떠난 것이다.

이 친구가 애초에 갈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연은 구질구질하다. 모 수도권 의원실에 9급으로 합격했는데 말을 바꿔 ‘당분간’ 인턴을 제안하더란다. 고민 끝에 거절했다. 얼마 안 가서 다른 의원실에서 8급을 제안받았다.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의원실에서 7급으로 합격했다. 당연히 8급 자리를 거절하고 7급을 선택했다. 그런데 7급 자리가 취소되었다.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다 결국 실업자가 된 경우가 꽤 된다. 실업의 고통, 번뇌는 생각보다 크다. 심약한 일부는 아예 여의도에 발걸음을 끊기도 한다. 누구나 일자리를 잃게 되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보좌진들도 별다르지 않다. 국회의원을 모시며 정치권력의 한 모퉁이에 서 있다 내쳐진 상실감을 견디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 이 후배는 꿋꿋하게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본인이 실직자가 된 지 사흘 만에 다시 국회를 찾았기 때문이다. 보좌진 신분증을 반납하고 방문자증을 발급받아 옛 직장에 들어오는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1,000명 가까운 다른 모든 옛 동료 보좌진들도 이 친구처럼 꿋꿋했으면 좋겠다.

우리 보좌진들의 실직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자리를 못 잡으면 자괴감이 드는 건 어찌 할 수 없다. 국회 보좌진 선발이 공채보다는 인맥과 추천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실직의 아픔 틈틈이 평소 사람을 많이 사귀어 놓을 걸, 평판 관리를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거센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러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국회 곳곳에 당신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을 것이고, 로텐더홀 어딘가에는 당신이 흘리고 간 땀방울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잠깐 자리를 비웠지만 잠깐의 재충전 뒤에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어쩌면 당신도 이미 몇 번 겪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낙담하지 말자.

국회의 보좌진 일자리 숫자는 2,700여 개로 정해져 있다. 1천 명이 새로 들어왔으니 1천 명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다. 어느 방향이냐가 다를 뿐. 누군가 남고 누군가 떠난 것이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폴레옹이 말했듯 비장의 무기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희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