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인간추물’, ‘똥개’, ‘쓰레기’.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노동신문 담화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한 탈북자들을 지칭한 말이다. 그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고 하며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거친 비난을 받자마자 통일부는 4시간여 만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률안’을 준비 중이라는 브리핑을 했고, 이어 청와대도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라고 했다. 소리없는 삐라의 심리전, 과연 백해무익한 행위일까?

비교 광고가 허용된 이후, 최근 들어 경쟁 브랜드를 겨냥한 ‘네거티브(negative)’ 마케팅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 글로벌 기업들도 재치와 재미 요소를 더한 비교 광고로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전략을 많이 사용해 왔지만, 최근 일부 기업들이 일반적인 ‘비교 광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비방과 흠집 내기 수준의 마케팅으로 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남양유업이 경쟁사인 매일유업을 비방한 사건이 대표적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사례다. 남양유업이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경쟁사인 매일유업의 목장이 원전 근처에 있어 방사능 유출 위험이 있다는 식의 비방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건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네거티브’ 수준을 지나 상도의를 넘어선 ‘비방 마케팅’은 초기에는 경쟁사의 매출에 타격을 주고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면서 자사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초래한다. 더 크게는 해당 업체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기업의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도 있다. ‘공정거래법’은 객관적인 근거 없이 허위의 내용으로 비방하거나 불리한 사실만을 표기해 비방하는 ‘표시 광고 행위’를 위법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비방’과 ‘마케팅’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전쟁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건조기와 의류관리기 등 가전 시장에서 벌어지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네거티브 마케팅 전쟁이 좋은 사례다. 생활가전 시장의 주도권 쟁탈을 위한 양측의 전쟁이 심화되면서 경쟁사 제품의 기능에 대한 비방 광고, 실험을 통한 성능 폄하 광고 및 헷갈릴만한 부정확한 문구를 이용한 과장 광고 등 때로는 범법에 가까운 비방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이 이처럼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시장점유율 경쟁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이 비슷한 품목의 경우에는 네거티브나 비방의 수준이 더 강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경쟁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영업 현장에서의 네거티브 전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경쟁제품 대비 명확한 차별점이나 특장점을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비방, 부정확한 정보를 이용한 불안감 조성 등 과도한 네거티브 마케팅은 결국 브랜드 신뢰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 공멸의 위기감 때문일까? 최근 삼성과 LG 양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상호 신고한 건에 대해 신고를 취하하면서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네거티브 마케팅을 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거친 언사로 엄포와 위협을 하는 것은 삐라에 의한 대북 심리전이 백해무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방부는 “접경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켜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글로벌 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각인할 수 있는 마케팅 전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심리전도 필수다. 더욱이 국가간 심리전에 대한 무게감은 감히 시장에서의 마케팅 전쟁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민간단체가 벌이는 심리전이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무조건적인 중단만을 피력할 것이 아니라, 양측의 공멸을 피하고 상생을 기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우리의 장점을 북녘 동포에게 부각시킬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을 찾아내는 것 또한 아찔하고 치열한 심리전 한복판에 선 정부의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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