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바위 얹은 암봉 퍼레이드

‘산 속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內藏山).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 단풍으로 지천을 물들이는 내장산은 찾는 이의 가슴에 진한 추억을 남긴다. 때문에 ‘호남의 금강’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다. 불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가 이루어내는 황홀경은 이 땅의 단풍비경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 어디 내장산의 비경이 가을뿐일까.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짙고 무성한 녹음, 그리고 이 겨울에는 바위절벽을 감싸고도는 아름다운 설경이 오가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단풍터널, 설목으로 변신


내장산은 내장 6봉과 백양 3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크게 내장산 구역과 백암산 구역으로 나뉘어진다. 손쉽게 케이블카를 타고 9개의 암벽과 내장사, 벽련암, 우화정 일대의 전경을 둘러 본 후 공원 내 꾸며진 자연탐방로를 가볍게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겨울 눈꽃의 향연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짧은 산행으로는 내장산 겨울풍경의 깊은 진면목을 볼 수 없으니 꼭 아이젠을 챙겨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장산 구역 매표소를 통과하면 오른쪽부터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문필봉, 연자봉, 장군봉이 병풍을 둘러친 듯 빙 둘러가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600m 이상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절경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먼 거리의 봉우리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내장산 입구 가을 단풍터널이 설목으로 바뀐 풍경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내장산 가을의 삼홍 중 인홍(人紅)이 사라진 고즈넉한 겨울 산책길은 순수 그 자체일 것이다.
눈 터널을 통과하면 가을단풍이 비쳐 수홍(水紅)이라 불리던 우화정이 겨울 자태를 뽐내고 그 뒤로 내장산의 명물인 케이블카가 보인다. 혹시나 겨울철에도 운행이 가능한지 걱정이 앞서지만 대부분은 정상운행을 하니 안심해도 좋다.
덜컹하는 진동과 함께 서서히 전망대를 향해 가는 동안 사방에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전경이 새삼스럽다. 케이블카 도착지점에서 전망대까지는 5분 남짓. 전망대 가는 길에는 한겨울에도 초록색의 나뭇잎을 축 늘이고 빼곡히 들어선 굴거리나무 군락을 구경할 수 있다.


암벽 사이 패인 협곡 장관
전망대에 들어서면 내장산 일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겨울 설산의 풍광이 한없이 펼쳐진다. 암벽이 솟아있는 사이사이로 패어 들어간 협곡, 새하얀 숲 능선 위로 비죽비죽 하늘을 향해 솟은 암봉이 그리는 산 윤곽의 아름다움은 비록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보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다시 내려와 내장사로 향하다 보면 내장사 일주문 우측으로 벽련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벽련암으로 가는 길에 쌓여 있는 눈은 비록 낮은 산이지만 아무 준비 없는 일반인의 등산을 막기에 충분하다. 다시 내장사로 발길을 돌려 내장산 반나절 코스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636)에 영은조사가 창건하면서 영은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시대 1539년에 이르러 왕실에서 강제로 불태운 뒤 폐허로 남아 있던 터에 1557년 희묵대사가 새롭게 가람을 이뤘고 이때에 내장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연못에 비치는 정혜루가 나온다. 정혜루 밑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들어서면 양쪽의 극락전과 명부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왼쪽 약간 뒤로 물린 자리에 관음전, 마당 중간에 탑이 서 있다. 다시 극락전 옆 안쪽으로 들어서면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다. 발길을 명부전 앞쪽으로 옮기니 눈꽃이 가득한 속에 바위로 솟은 서래봉이 보인다.
내장사 대웅전은 특이하게도 네 기둥이 하얀색의 배흘림 돌기둥이다. 이전 타버린 아픔을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있는 동학혁명 보고서
내장산 산행의 묘미는 바위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암봉들을 연결할 수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암봉들이 하나씩 다가오는 퍼레이드. 내장산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서래봉을 경유한 산행이 제격이다. 일주문에서 족히 30분이면 서래봉을 지붕 삼은 벽련암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벽련암은 원래 내장사로 불리었으나 그 이름을 일주문 옆에 새로 지은 내장사에 내어주고 백련암으로, 다시 벽련암으로 고쳐 불리고 있다. 서래봉 중턱에 호젓하게 앉은 모습이 영락없는 연꽃이라 그 이름도 벽련암이지만 겨울철만큼은 백련암이 왠지 더 어울리는 듯하다.
입구에 있는 문루에 올라 서래봉을 바라보면 순백의 눈, 푸른 소나무, 맑은 하늘과 장대한 암벽까지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이다. 벽련암을 나서 원적암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어 산행이 편하고 겨울 숲 눈 터널의 진수를 보여준다. 원적암 가는 길에는 아직 붉은 기운을 남기고 있는 감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고 원적암 입구에는 푸른색을 간직하는 비자나무 군락(천연기념물 153호)이 자리 잡고 있다.
원적암에서 다시 오르막을 택하여 불출봉을 기점으로 한 암봉 산행을 시작하게 되면 이젠 아이젠을 꼭 챙겨야 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금선계곡을 통해 내장사로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또는 이른 시간에 출발한다면 백암사를 목표로 한 종주 산행도 권할 만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인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도 둘러볼 일이다. 정읍은 우리 역사상 최대의 민중항쟁이 일어난 곳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교육관, 황토현 전적지, 전봉준장군 고택 등 동학혁명 관련 많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영화 & 여행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다음 세상 만남 기약하던 깊고 푸른 바닷가 신두리

“통하였느냐~”. 18세기 후반, 요부와 바람둥이가 정절녀를 유혹하는 사건이 양반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이름하여 ‘스캔들’. 영화 속 색(色)은 강렬하고 다채롭다. 아울러 은밀하게 감도는 에로틱함. 조선의 화려한 상류 사회, 그 스타일 속으로 걸어 들어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그 스크린 속 배경 촬영지마저도 화면을 압도한다.
신두리해변은 조원의 죽음을 슬퍼하며 다음 세상의 만남을 기약하는 정절녀 숙부인의 가슴 아픈 장면이 연출된 곳이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종일 선생의 생가를 왼편으로 돌아 더 달리면 신두리 해수욕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탁트인 백사장과 함께 깊고 푸른 바닷물이 태평양의 바닷가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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