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소규모 궁궐 나들이


가을이 겨울로 기운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낯설고, 선득 불어오는 찬바람도 아직 이른 것만 같다. 계절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사무실에 우리 일상을 가둬둔 탓이다. 친구에게‘바람맞은’날도 좋고, 약속 없는 일요일 오후도 좋겠다. 교통카드 한 장, 길다방에서 마실 커피 값을 챙겨들고 고궁 나들이를 나서보자. ‘외국인용’으로 치부해 버린 우리의 궁에는 첫사랑의 추억도, 한 것 없는 듯 저무는 한해를 다독여 줄 따뜻함도 한 줌 숨겨져 있다.

# 고종의 잠저, 운현궁

종로를 숱하게 지나다니면서도 한번도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않았던 운현궁.
경복궁, 덕수궁 등의 ‘유명 궁’에 비해 이름마저 낯설어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운현궁은 ‘경복궁’과 같은 왕이 머물던 궁궐이 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사저이자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임금이 되기전까지 출생, 성장한 곳)였던 곳이다. 여느 궁들과 규모와 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셈. 그래서 일까. ‘700원’의 비싸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풍경은 생경하다.
화려한 색색깔 단청 대신 오랜 시간 바람에 깎이고 비에 쓸린 기둥과 마루가 우아한 빛깔로 그 ‘기품’을 드러낸다. 운현궁의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네모기둥의 민흘림 기법, 처마의 홑처마와 겹처마, 팔작지붕. 중·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배웠을 전통가옥 양식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운현궁의 탄생은 이렇다.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한 지 한달쯤 지나 대왕대비의 하교로 공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공사 9개월만에 뚝딱 노안당과 노락당 준공이 이뤄졌다. 흥선대원군의 사저였을 때 운현궁 위치는 창덕궁과 경복궁의 중간부근으로 지금의 운현궁과 덕성여대 자리에 해당된다.

고전건축양식의 백미
운현궁은 노락당과 노안당, 이로당으로 구성됐다. 운현궁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도 바로 이 노락당.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가족들의 회합이나 잔치 등 큰 행사 때 주로 이용했다. 덕분에 규모가 궁궐에 비해 손색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노안당은 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 그가 임오군란 당시 청에 납치됐다가 환국한 후 세도정치 아래서 운둔생활을 했던 건물이기도 하다. 노안당은 전형적인 한식 기와집으로 추녀 끝이 한복의 소매깃처럼 섬세하고 곱다.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꼼꼼히 둘러보는 건축학도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운현궁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4대문을 빼놓을 수 없다. 한창 전성기였을때는 정문, 후문 경근문(敬覲門), 공근문(恭覲門)의 4대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후문 하나만 남아 있다. 규모와 구조가 웅장하고 화려해 대원군이 권좌에 있을 때를 짐작케 한다.
그저 한바퀴 마실 삼아 둘러보는 것으로는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역사 강좌를 신청해 보는 것도 좋을성 싶다. 운현궁에서는 개인 또는 단체 신청을 받아 역사강좌를 마련중이다. 설날과 대보름, 추석 세 시절에는 전통 놀이 행사도 마련된다. 전통혼례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대목. 실제 운현궁은 조선26대 고종의 잠저이며 운현궁에서는 국모 명성황후 민비가 가례를 올린 유서깊은 궁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사대부가 올리던 전통 혼례방식으로 한국적 예식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다.

# 조선의 역사가 서린 곳, 경희궁
충정로와 광화문 사이를 걸어 본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어가 볼까 생각했던 곳. 늘 그 자리에 있다보니 막상 들어설 엄두를 내지 않게 되는 곳 중 하나가 경희궁이다. 공연에 전시회까지 둘러보고 결정적 한마디(!)를 던질 장소가 필요하다면 경희궁을 향하자.
서울역사박물관을 기웃기웃 하다가 살폿 들어가 본 경희궁은 일단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라게 된다. 웅장한 자태로 경희궁을 찾는 발길을 환영하고 있는 흥화문은 원래 현재의 구세군 빌딩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일제가 1932년 흥화문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떼어갔던 것을 이전해 현 위치에 복원한 것.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겪은 문(?)이란 걸 알고보면 더욱 반갑다.
경희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살았던 곳으로 서쪽의 궁궐이라 해서 서궐(※창덕궁과 청경궁을 동궁이라 함)이라 불리기도 했다. 광해군이 축출된후 영조 36년(1760) 궁의 이름을 경희궁이라 개칭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해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 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1910년 일본인 학교인 경성 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궁궐 건물이 헐려 나갔고,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됐다. 1988년 경희궁복원 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공개된 것은 2002년부터다.

늦가을 최고의 데이트 코스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전하~!”
숭정전 앞에 사극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장면 하나가 오버랩된다. 흥화문을 통해 들어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인 승정전은 임금과 신하들의 조회가 이뤄지거나 궁중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지는 곳이다. 특히 경종·정조·헌종 등 세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숭정전 건물을 일본인 사찰인 조계사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남아있다. 현위치의 숭정전은 복원된 것.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됐던 태령전도 2000년 복원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한 경희궁은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한적해 마음속 얘기가 절로 나온다. 늦은 가을, 멀지 않은 고궁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니는 것만큼 인생의 낙(樂)이 또 있을까?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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