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은행나무 길’ 영주 부석사와 양평 용문사


떨어지는 은행잎만큼 늦가을의 정취를 잘 나타내는 것이 또 있을까. 모든 계절의 변화가 만물의 형형색색의 변화를 통해 인간에게 알려지듯 노란 은행나뭇잎은 가을과 겨울의 교차를 의미한다. 은행나무만큼 인간세계의 이치를 잘 나타내는 나무도 없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봐야 그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남(男)과 여(女)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이치인 것. 이번 주에는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은행나무 길을 찾아 늦가을의 향취에 푹 빠져보는 것도 색다른 매력일 것이다.

천년의 세월 노랗게 지켜온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서늘한 가을바람이 왠지 마음을 들썩거리게 하지만 짧은 주말 시간만으로 어딘가를 떠나기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주변을 온통 노랗게 뒤덮은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보러 양수교를 건너보자.
은행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용문사의 가을은 먼저 진입로인 331번 지방도로를 달리면서부터 시작된다. 한적한 시골길에 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마다 황금빛으로 물든 잎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이왕이면 차를 세워두고 뚜벅이가 되어 걸어보자. 시골길의 정겨움과 울긋불긋 화려하게 채색된 온갖 단풍, 그리고 어깨로 또는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져내리는 낙엽들에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케 될테니.
용문산 중턱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에 대경대사가 지은 절. 절 입구에 있는 일주문은 두 기둥에 용이 꿈틀거리듯 휘감겨 있어 말 그대로 용문(龍門)임을 실감케 한다. 일주문에서부터가 바로 1km 남짓 되는 은행나무산책길의 시작이다. 용문사의 명물인 수령 1100 년 된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곳 일주문에서 40여분은 족히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한 숨 먼저 나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르는 길은 등산의 수고를 잊게 할만큼 멋지다.
먼저 수 천 그루의 은행나무들이 뿜어대는 열매의 진한 향에 코끝이 알싸해지고, 그 은행잎의 빛깔 또한 산사를 온통‘노란 천국’으로 물들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쪽 편에 계곡을 끼고 용틀임하듯 하늘을 가리고 올라간 거목들의 원시림이 펼쳐지고 정상에서 뻗어내린 청명한 계곡물에는 형형색색으로 문든 단풍잎들이 따라 흘러간다. 그 절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넋을 잃고 만다.
가을의 정취에 정신없이 빠져 들다 용문사 앞마당에서 드디어 어마어마한 명물과 조우하게 된다.
1100년 동안 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켜온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높이 61m에 둘레만도 14m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나무다. 이렇게 숫자만 들어서는 이 은행나무의 크기가 얼마큼 되는지 사실 상상하기 힘들듯하지만 이 나무 한 그루에서 받아내는 은행이 15가마라고 한다면 그 크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가을을 맞은 이 은행나무가 내뿜는 노란색 물결은 인간이 압도당할 만큼 웅장한 크기와 세월에서 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딱 멈추게 한다. 그리고는 이내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괜찮다” 고 토닥여주는 듯 마음의 위안을 얻게 만드는 포근함도 느끼게 해준다.
사실상 용문사의 명물인 수령 1100년 짜리 은행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올해 가을 단풍의 절반은 다 본 셈.
하지만, 이것이 용문사의 전부는 아니다. 용문사에는 은행나무 외에도 숨겨진 많은 것들이 있다. 대웅전 앞마당의 600년 된 주목도 볼거리. 또한 절을 중심으로 용각바위와 마당바위 등 숨겨진 보물들도 소박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600여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보물 제 531호인 정지국사부도와 비도 아름답다.

은행나무 숲길의 황홀함에 빠지다,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에 붙는 수식어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다. 신라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부석사는 역사는 물론 기품과 문화적 가치에서도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천년 고찰. 오랜 절인만큼 부석사로 가는 길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모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것 마냥 설레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한번 발길이 머문 사람은 물론이요, 몇 번이고 발걸음한 사람도 전인미답(全人未踏)의 심정으로 다시 찾게 되는 곳 또한 부석사다.
특히 가을 이맘때의 부석사는 환상적인 금빛 숲 터널의 은행나무길과 조우하게 되기에 더욱 운치 있다.
풍기 IC에서 빠져나와 931번 국도를 내달리다보면 부석사의 삼색감동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바로 파란 가을하늘에 마음이 열리고, 새빨갛게 익은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들의 환한 미소에 기분 좋아지고, 길 양 옆으로 피어오른 샛노란 은행나무숲길에 말 그대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꼬불꼬불 부석사를 만나러 가는 그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다.
부석사 매표소에서 은행잎이 깔린 박석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진입로는 산사가 가진 고즈넉한 멋을 대표하는 그야말로 가을 부석사의 백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터널을 상상하겠지만 사실 부석사 은행나무 길은 500m로 짧은 편이다.
하나 싱싱한 몸매 위에 구성지게 달려있는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결에 아우성치는 황홀한 자태는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단풍터널을 걷다보면 1000년을 살아온 노(老)산사와 따사로운 가을햇살과 은행잎의 조화에 숨이 턱턱 막힌다. 가을을 맞은 부석사가 아니면 이 빛깔들을 어디서 볼 수나 있을까. 길 양 옆으로 주렁주렁 새빨간 사과가 익어가는 풍경도 부석사만의 매력이다.
은행잎길을 따라 경내에 들었간다면 보물구경은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기쁨이다. 올라가는 길에 맨먼저 만나는 보물은 신라시대의 석조유물인 당간지주다. 꽤 경사진 천왕문을 지나고 구품 만다라를 상징하는 아홉석축을 잇는 계단을 오르자 그제야 가을빛을 머금은 절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부석사는 아름다운 은행나무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인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석등, 조사당 등 많은 국보도 볼수 있어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특히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부분이 조금 불룩한 배흘림기둥의 아름다움이 유명하다. 그러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석사의 매력은 안양루에 서서 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전경. 발아래 가득 동그란 산사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멋진 건물들을 감상한 다음 여유가 된다면 무량수전에서 수많은 연봉들이 펼쳐진 붉은 빛 노을을 감상하고 돌아가는 것도 좋겠다.
부석사만 보더라도 가을 여행 코스로는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다. 하지만 영주에는 부석사 말고도 소중한 보물을 두 가지 더 갖고 있다. 바로 소수서원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엘리트들이 모여 공부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현재 당간지주와 돌로 된 유물,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있는데 현대의 학교와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을 듯.
유교문화전통과 정신을 계승하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체험 공간인 선비촌도 돌아보면 좋다. 1만7,400평의 널찍한 공간에 유서 깊은 고택 76채를 돌멩이 하나 하나까지 일일이 세어가며 원형대로 재현하고 지역문화재인 해우당, 두암고택 등 기와집과 선비가 살던 초가, 마을정자, 물레방아, 곳집 등을 옛 모습과 똑같도록 실감나게 꾸며놓아 아이들과 함께 둘러볼 장소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양평시, 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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