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면 계절이 주는 스산함에 심산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애잔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여름 깊은 계곡에서 즐기는 청풍과 짙푸른 초목의 향기는 내일이면 떠오를 태양의 희망까지도 삼켜버릴 듯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덕풍계곡과 용소골은 전국 제일의 트래킹 코스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심산유곡 중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일단 들어서면 기암괴석과 맑은 물, 원시림과 마주치는 곳곳이 비경이다. 한 굽이를 돌면 또 한 굽이의 계곡이 나타난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대자연의 미관으로 가득하다. 금강산 내금강을 방불케 한다는 그곳으로 떠나보자.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하는 동해안 7번 국도 드라이브 코스는 강릉 동해를 거쳐 삼척에 다다를 무렵 최고조에 이른다. 특히 장호항 해안이 한 눈에 들어오는 해안 도로를 달릴 때면 어디라도 시원스레 펼쳐진 동해를 품에 안을 것만 같은 전망대가 된다.

장호항 아침 여는 통통배

삼척 장호항, 작은 포구의 모습은 한가하기만 하다. 밤길을 달려왔다면 통통배들의 아침을 여는 소리가 정겹게 다가온다. 그나마 숨을 죽이고 찰싹거리는 파도에 귀를 맡긴다면, 세상의 모든 소리는 순간 묻혀버린다. 수평선 너머 붉은 기운이 항구를 물들일 때면 활기가 넘친다. 배가 들어오는 항구의 아침,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활어 경매가 시작된다. 전국에서 직접 활어차를 가지고 온 횟집주인뿐만 아니라 인근의 식당에서도 신선한 고기를 사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덕풍계곡 진입로인 풍곡1리로 가기 위해선 416번 지방도로를 타야한다. 덕풍계곡과 용소골이 위치한 응봉산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다. 삼척시와 경북 울진군에 위치하고 있는 응봉산은 험난하지만 신비감 넘치는 산이다. 응봉산의 지명은 매와 닮은 산에서 유래했다 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매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방인의 쉼터 산골마을

조그마한 오솔길을 따라 응봉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세에 짐짓 놀라게 된다. 계곡 입구에서 계곡 안까지는 약 8㎞정도.계곡물은 맑다. 계곡의 수려함이 옥빛에 비친다. 발길에 닿는 이름모를 야생화를 벗 삼아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예기치 못했던 자그마한 평원이 펼쳐진다.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 선생이 9년 흉년이 들어 종자가 귀해지면 찾아가라했던 삼풍(풍곡, 삼방, 덕풍) 중의 한 곳이다. 지금까지 이어졌던 산골 계곡미는 간데없고 이제부터는 평범한 시골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덕풍마을이다. 분명 이곳에는 화려한 오색빛의 자연도 없고, 금방 취해 버릴 것 같은 진한 야생 향기도 없다. 하지만 덕풍마을은 시골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이방인을 맞는다. 덕풍마을은 총 11가구로 이뤄졌는데, 아직까지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오지 중의 오지다.

경사면을 개간해서 만든 밭, 계곡가에 이어진 다랭이 논이 이를 대변해준다. 덕풍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면, 다음 코스는 용소골이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사람 한 명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진다. 계곡을 아슬아슬하게 거슬러 올라가는 말 그대로 산행길이다.응봉산에서 가장 각광받는 코스는 용소골 계곡산행이다. 수많은 폭포와 깊은 소들이 산재한 이 계곡은 아마추어 등산인들에게는 매우 모험적인 산행지로 알려져 있다. 몇몇 전문산악인들만 끼리끼리 찾을 만큼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비가 올 때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이곳 용소골엔 3개의 용소가 있다. 덕풍마을에서 약 1.5km의 거리에 이르면 제1폭포와 용소가 있고 그 수심은 약 40m에 이른다. 여기서 또 1.5km 지점에 이르면 제2폭포와 용소가 있으며 그 용소의 수심도 제 1폭포와 같다. 여기서 제 3폭포까지 뻗은 계곡의 반석지대는 장장 3km에 이른다.

깊이를 모르는 용소폭포

마을에서 20여분을 오르면 제 1용소가 나온다. 조롱박 모양의 용소폭포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시퍼렇다 못해 검푸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진덕왕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서 나무로 만든 비둘기 3수를 날린 즉, 1수는 울진 불영사에 떨어지고 1수는 안동 흥제암에 날아가고 1수는 이곳 덕풍용소에 떨어졌다. 이후 용소골 일대는 천지의 대변혁이 일어나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산수의 조화를 이룩했다. 바라볼 때는 쉽게만 생각되지만, 절벽사이로 난 밧줄을 잡고 용소 위쪽으로 가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용소의 깊이는 먹물을 풀어놓은 듯 보는 이를 주눅들게 만든다. 제 1용소를 무사히 건넜다면 여기서부터는 선택이다. 더 오르고 쉽지만 그 이상은 아쉽게도 초보자는 어려운 산행이다. 전문 산악인이나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이 동행해야 한다. 20~30m 되는 보조자일이 꼭 필요한 등산길이다. 그렇다 해도 초보자들에게 제 2용소, 제 3용소를 거쳐 응봉산 정상까지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되돌아오는 길, 산천어가 노니는 덕풍계곡 맑은 계곡수엔 자연과 내가 하나가 돼서 호흡했던 4시간 반 도보탐사의 여운이 비친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삼척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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