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달력은 어디로 갔을까. 한 해를 돌아보며 차분히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장소가 필요하다면 고즈넉한 산사(山寺)로 향해보자. 여기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운주사가 있다. 민초의 삶과 닮은 미륵 석불의 생김처럼 그럴싸한 전설이 또 다른 전설을 낳고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곳.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운주사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이들에게 끊임없는 이야기를 건넨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일약 민중해방의 미륵성지로 떠 오른 운주사. 원래 운주사에는 1,000구의 석불과 1,000기의 석탑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천불천탑’이라 불렸다고 하나, 이제 남은 것은 석불 93구, 탑 19기뿐이다. 그럼에도 천불천탑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명확하지 않기에 많은 전설과 사연들이 전해진다. 아직도 많은 작가들은 이 운주사를 주인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각양각색 석불과 탑

천불천탑의 불가사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우선 광주행 버스를 타고 5시간 여 내달린 다음, 또 다시 화순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긴 시간을 토해내야 당도할 수 있는 그 곳, 운주사.절이라 해서 경주 불국사를 연상한다면 오산이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미지의 세계에 온 것 마냥 전혀 낯선 풍경에 놀라울 뿐이다. 이목구비를 알 수 없는 불상과 외계인을 닮은 불상, 기존의 절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깨는 형상은 뭔가 빠진 듯하면서도 없는 것이 없다는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운주사에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석불과 탑을 차근차근 감상해 봐야 한다. 특히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은 지극히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 아내, 아들, 딸, 아기부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민초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운주사의 돌부처들은 세련된 불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근엄함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이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소박하고 독특한 매력이다.일주문을 통과하면서 객을 맞는 것은 보물로 지정된 9층 석탑. 전체적으로 세련된 조화를 이루면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꽃잎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것이 바로 운주사 중심탑이다. 배로 치자면 돛대에 해당되는 곳이다. 바로 뒤에 7층 석탑이 따르는데, 9층 석탑에서 사선으로 바라보는 그 조화가 운주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각 석탑들의 몸돌에는 X, V, ◇, // 등의 무늬가 제각각 새겨져 있다. 대웅전으로 가는 천왕문에 이르기 전,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보물 제797호인 석조불감이다. 독특한 양식의 불상으로 돌을 쌓아 만든 석실에 돌부처 2구가 서로 등을 대고 있다. 정확히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니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다.

북두칠성 상징, 칠성바위의 전설

그 뒤로 보이는 원형다층석탑 역시 보물인데 현재는 보수 중이다. 여기서 팁 하나. 보통 운주사 광경을 사진으로 담을 때 이 석불군을 기준으로 많이 찍는데 석조불감이 못 미치는 지점에서 그 두 보물을 함께 찍는 것이 좋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운주사 와불은 운주사에 들어가면 놓치지 말고 봐야할 곳이다. 대웅전에서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다보면 자연석 위에 조각된 거대한 두 불상 앞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 와불에는 도선국사가 하루 낮과 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고자 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동자승이 장난삼아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결국 완성을 못보고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은 끝나지 않는다. 이 와불이 일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는 세계에서 ‘와불’ 하나뿐이다.

자세히 보면 불상 아래쪽에 쐐기를 박아 떼어놓으려는 흔적도 보인다. 또한 두 와불 중에 아래 와불은 머리에 붙어 있어야 할 육계가 떨어져 옆에 서 있다. 누군가가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잘라낸 흔적인 듯 보인다.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진지한 장난. 와불을 감상하고 내려오다 보면 칠성바위 표지판이 눈에 보인다. 칠성바위도 와불과 함께 세계에서 유일하다. 각기 다른 7개의 타원형 돌인데,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해서 칠성바위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칠성바위의 위치각이 북두칠성의 각도와 똑같아지는 날, 미륵세상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설화들이 있어 더욱 신비로운 곳이 바로 운주사다.

각양각색의 운주사 탑을 제대로 보려면 대웅전 뒤에 있는 공사바위에 올라가야 한다. 이 공사바위는 옛날 천불천탑 불사를 할 때 도선국사가 내려다보며 지시했던 바위라 공사바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바위에 올라 내려다보면 절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S자 모양의 굽이치는 계곡에 수많은 탑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그 곳에 오르면 “과연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까”라는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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