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바람, 물의 자연과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곳을 찾는다면 춘천 외곽에 위치한 청평사만한 곳이 없다. 청평사는 경춘 국도를 통한 육로와, 소양호에 이어지는 수로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수로를 통해 접근할 경우 일출 무렵 소양호에 펼쳐지는 장대한 물안개와 낙조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소양호와 청평사 일대를 둘러보고 난 뒤 소양댐 주변에서 춘천의 별미인 막국수를 즐기고,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시내로 들어와 인형극장과 애니메이션 박물관, 그리고 최근 설치된 소양강처녀 동상을 보고 온다면 추억에 남는 겨울철 주말 나들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평사는 고려시대 뛰어난 학자였던 이자현, 조선시대의 김시습이 은거하였던 곳으로 청평사를 중심으로 한 고려시대 정원유적지 주변의 풍광이 뛰어나 지금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이곳은 고려 광종때 창건되었던 백암선원(白巖禪院)의 터에 이자현의 아버지 이의가 다시 건립한 보현원의 자리였다고 한다. 그 뒤 이자현이 관직을 버리고 경운산에 은거하여 아버지가 건립한 보현원을 중수, 원의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으로 고치고 경운산을 청평산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록이 ‘청평산문수원기비(淸平山文殊院記碑)에 남아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 ‘오봉산’

청평사의 주산인 경운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오봉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등산코스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청평사로 가는 길은 육로, 수로를 통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육로를 택한다면 춘천에서 양구방면 46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청평사 방면 배후령과 배치고개를 넘어 심산유곡 부용계곡의 짙은 숲과 물소리를 따라 들어갈 수 있다. 수로로 간다면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루트로 시간만 잘 맞춘다면 아름다운 소양호의 물안개 (일출 직후)와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1973년 축조된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10여분 이동 후 사원 입구 선착장에 다다른다.

선착장에서 내려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우측으로는 부용봉으로 가는 계곡이 있고, 좌측으로는 계류를 따라 오르는 산길이 있는데 이 방향이 청평사로 가는 진입로이다. 좌측 길을 따라 계류를 내려다보며 수림 사이의 산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이자현의 문수원 정원이 시작되는 거북바위가 있다. 바위를 따라 약 100여미터 더 올라가면 구성폭포(九聲暴布)의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이 폭포는 구곡(九谷), 구송(九松)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폭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올라가다 보면 민박집 건너편 폭포의 우측 암반 위로 고려 초기의 3층석탑이 보인다.이곳에서 청평사 입구 석계단까지 약 350m 구역의 진입공간에는 진락공 이자현의 부도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부도와는 다르게 이곳과 관련된 학자를 모신 부도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도가적 의미 ‘문수원 정원’

부도의 맞은편으로는 이자현이 문수원 정원을 조영하면서 만든 방지가 남아있는데, 주산인 오봉산의 봉우리를 비춘다 하여 영지(影池)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영지에는 세 개의 바위가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자현이 이곳 문수원 정원을 도가사상의 이상향인 봉래, 영주, 방장의 삼신산(三神山)에 비유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듯하다. 이곳 영지는 절에 오르다가 잠시 쉬어가는 공간으로 자신의 모습을 영지 속에 드리워 심신을 정갈히 하고 속루(俗累)를 털어 버리기 위한 불가적인 상징과 함께 속세를 떠나와 이상향을 만끽하기 위한 도가적인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

영지를 지나 10여분 오르면 사찰 진입부 돌계단 위의 큰 잣나무 2주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이를 통과하면 보물 제164호 회전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곳은 사찰의 중문으로 문 양옆으로 사천왕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회전문을 지나 궁전의 정전 뜰처럼 박석(薄石)을 깔아놓은 능인전 앞마당 보도와, 창경궁에서와 같이 원형의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들게 한 배수구 덮개돌 등은 전체적으로 다른 산지사찰에 비해 비교적 고급의 조경양식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조선 명종때 보우대사에 의한 중창 당시 문정왕후의 적극적 지원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왕실에서 목수와 자재를 지원했고 화목(花木)까지 왕궁에서 가져와 사원을 꾸몄을 정도로 당대에는 중요한 사찰 중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왕궁에서 가져와 꾸민 조원유적을 확인할 수는 없다고 한다.

자연으로 들어가는 산문

청평사를 둘러본 뒤 요사채 앞 계류를 따라 더 오르면 길가에 환적당, 설화당부도가 있고,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 좀더 오르면 해탈문이 나온다. 이를 지나 서북쪽으로 140m 정도 가면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는 암벽에 ‘청평선동(淸平仙洞)’이라 새긴 각자(刻字)가 있는데, 이는 이자현이 은둔하여 선불하는 정원이자 자연으로 들어가는 산문의 역할을 하는 듯싶다. 이곳으로부터 약 200m 소계곡을 오르면 1979년에 세워진 5층석탑과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 적멸보궁 옆 큰 암벽에는 청평식암(淸平息庵)이라 새긴 각자가 보이는데, 청평선동(淸平仙洞)과 청평식암(淸平息庵) 모두 이자현의 글씨라 전해진다.

이곳까지가 이자현이 조영한 문수원 정원의 영역이라 알려졌고, 이 구간에는 흐르는 계류를 따라 작은 폭포와 기암절벽이 있어 그야말로 선경을 이룬다. 계류 곳곳에는 편평한 암반 혹은 석축단을 쌓은 흔적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청평사 사원은 녹수청산의 경운산 선경 전부가 사원이며, 이 아름다운 자연조화 속에 속된 인공의 조원을 한다는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우리 전통 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자현은 문수원 정원의 조영을 통해 자연미를 거부하고 인공미를 강조하는 정원을 꾸미는 속된 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적멸보궁을 지나 낙엽이 수북이 쌓인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은 다소 험하긴 해도 오봉산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가 펼쳐지는데, 정상으로 가면 이러한 오봉산 풍광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정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길은 청평사 계곡 입구로 바로 이어지는 길과 극락전으로 이어지는 길로 갈라진다. 이 경로를 따라 청평사로부터 오봉산 정상까지 등산한 후 하산까지는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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