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양군은 산세가 좋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산세가 좋으니 당연히 계곡이 발달했고 가을철에 방문하면 형형색색의 단풍맛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지리산 능선을 이마에 얹고 사는 마천면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백무동계곡, 지리산자연휴양림 등이, 기백산국립공원을 등에 진 안의면에는 용추계곡과 용추폭포, 용추자연휴양림 등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함양을 찾은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명소는 함양읍내의 ‘상림’이다. 상림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인공 숲으로 갈참나무, 느릅나무 등 활엽수가 주류를 이루며 수종은 약 1백20여종을 헤아린다. 한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무성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가을이면 오색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운 숲, 가을의 끝자락에서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 함양상림으로 떠나보자.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라고 해서 여행객들의 접근이 어려울 것으로 짐작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서로 88올림픽 고속도로가 지나고 남북으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어 수도권에서 접근해도 넉넉잡아 3~4시간 정도면 다가갈 수 있는 고장이다.

멀리 지리산을 조망하는‘망악루’

함양군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들어선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인공 숲으로 신라 시대의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1천1백여 년 전 천령군(지금의 함양군) 태수를 지낸 최치원은 여름마다 위천이 범람해서 읍내가 물바다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거대한 숲을 만들었다. 3만6천평 규모의 상림은 예전에 ‘대관림’으로 불렸다. 상림 안에는 함화루가 들어서 있다. 이 누각은 본디 조선시대 함양읍성의 남문이었으나 193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멀리 지리산을 바라본다’고 해서 ‘망악루’라고 했지만 상림 안으로 이전되면서 이름이 함화루로 바뀐 이력을 갖고 있다.

최근 군에서는 상림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산책로를 정비했고 맨발건강지압로를 만들었는가 하면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등도 설치하고 인공 연못도 조성, 다양한 연꽃과 수생식물을 심어놓았다. 백련, 홍련, 황련, 분홍련 등이 한여름철부터 10월 중순 무렵까지 번갈아 피고 진다. 상림 중간 도로변에는 역사인물공원도 설치했다. 함양에서 태어났거나 인연을 지닌 인물들의 흉상이 공원을 지키고 있다. 최치원을 비롯 김종직, 유호인, 정여창, 박지원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의 모습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은리 석불도 숲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이 불상은 1950년 무렵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서 출토된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유서깊은 풍치속 역사와도 만나

3번 국도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거창, 아래로 내려가면 산청 땅에 이르고 24번 국도를 타면 함양 읍내로 연결된다. 26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육십령 고개를 넘어 전북 장수로 가게 되는데 서하면 남계천(또는 남천강) 주변에 농월정을 비롯,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의 정자가 줄을 잇는다. 강변 정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풍치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 함양에는 모두 약 1백50여 개의 정자와 누각이 있고 이 중 화림동계곡을 ‘정자문화의 1번지’로 손꼽는다. 현지 사람들은 농월정에서부터 거연정에 이르는 경치 좋은 골짜기를 통틀어 화림동계곡 또는 안의계곡이라고 부른다.골짜기 폭이 넓고 물의 흐름이 급하지 않은데다가 기암괴석이 널린 풍치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애초 화림동계곡에는 ‘팔담팔정’이라고 해서 여덟 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와서는 아쉽게도 농월정 등 네 개의 정자만 남아있다. 아쉽게도 농월정은 근래 화재로 소실되고 말아 현재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정자들은 한결같이 도로변에서도 쉽게 감상할 수 있으며, 한여름 정자 아래 물가는 현대인들도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은 명당자리다. 화림동계곡을 찾은 여행객들은 그 정자들 누각에 올라서서 누구나 선비의 자세로 돌아가 음풍농월을 즐겨봄직하다. 지리산 하봉에서, 중봉, 천왕봉, 제석봉, 벽소령 등을 거쳐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감상하기 좋은 곳은 휴천면 오도재 너머에 위치한 지리산 조망공원휴게소이다. 읍내에서 이곳을 가려면 24번 국도를 타고 남원시 인월면 방면으로 향하다가 난평리를 지난 곳에서 1023번 지방도를 타야 한다. 구절양장의 지안고개를 넘고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오도재를 다시 넘게 되고 오도재휴게소에 닿으면 육중한 지리산 능선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곳 말고도 지리산 능선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곳은 백전면 백운산 중턱의 상연대라는 고찰이다. 최치원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민중미학 본산 벽송사 목장승

오도재휴게소에서 지리산 능선 감상의 환희를 맛본 다음에는 마천면의 벽송사와 서암을 답사해본다. 칠선계곡 출발점이 되는 추성리 입구, 매표소를 거치기 직전 왼쪽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벽송사가 아담한 자태를 드러낸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가 않지만 삼층 석탑의 모양새로 짐작해볼 때 창건 시기를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 벽송사라고 불려오고 있다.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 절에 닿으면 우선 한 쌍의 목장승이 반긴다. 잡귀의 출입을 막고 사원의 풍수를 지켜주는 신장상이다.

왼쪽의 장승은 머리 부분이 산불에 타서 없어졌고 오른쪽 장승은 왕눈과 주먹코를 가졌다. 이 벽송사 목장승은 민중미학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70여년 전에 세워졌다고 하며 단단한 밤나무로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옛 모습이 남아있다. 서암은 근대에 지어진 사찰이며 바위굴에 석불을 모셔놓았다.벽송사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칠선계곡은 지리산 계곡 등반로 중에서 가장 길고 험한 곳이지만 계곡 전체가 무수한 폭포와 소, 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정하기 이를 데 없다. 빼어난 계곡미가 자랑이지만 난코스가 많기 때문에 등반하려면 충분한 사전준비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