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힘겹게 오른다. 징이 울린다. 석문이 열린다. 솔향기가 녹아든 청정한 연못 속에도, 익은 가을 바람에 구름마저 밀려난 청명한 하늘도 뚫을 듯 솟아오른 솟대가 보인다. 솟대 사이로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북소리에 맞춰 무사들의 장엄한 춤사위가 벌어진다. 솟대와 솟대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무사들의 몸놀림, 자연과 하나 돼 만들어낸 새로운 시간은 육십리 묵계 계곡을 타고 지리산 품안 깊숙이 자리한 삼성궁을 감싸고 있다. 지리산 중에는 등산객이 미처 모르는 수많은 구도자들이 골짜기마다 해탈을 구하고 있다. 그 중 신선도를 추구하는 젊은 수자들이 모여 일군 이색 마을이 삼성궁이다. 이곳은 해발 850m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청학동 도인촌에서도 산길을 휘돌아 1.5km 가량 걸어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멀고도 험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신비의 마을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삼성궁은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신성한 성역으로 이 고장 출신인 한풀선사(강민주씨)가 손으로 직접 쌓아올린 곳으로 아직은 외지인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신비한 마을이다. 청학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목장승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서 있는데 오른쪽은 도인촌이요, 다른 샛길이 바로 삼성궁이 있는 곳이다. 삼성궁 매표소를 따라 좁은 산길을 20여분 올라가다 보면 막바지에 다다른다. ‘민족통일대장군’, ‘만주회복여장군’이라고 쓰여 있는 장승과 옹기종기 돌로 쌓아올려진 입구로 보이는 돌문이 보인다. 그리고 걸려있는 커다란 징. 그리고 신세계가 펼쳐진다. 삼성궁에 들어가려면 우선 입구인 석문(石門)에 이르러 이 징을 세 번 쳐서 손님이 왔음을 알려야 한다. 징을 세 번 치니 과연 석문이 열리면서 고구려 시대 복장에 칼을 차고, 긴 머리에 삿갓을 쓴 수자가 홀연히 나타난다.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에 반해 수자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면 안 된다. 수자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후에 플레시를 터뜨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그리고 함께 삼성궁을 찾은 일행 중 누군가는 수자들과 같은 고구려 복장을 해야만 삼성궁 문이 열린다. 고구려식의 삼성궁 도복이다. 석문 입구에는 무단 침입자는 3,300배를 시키겠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으며, 궁내에서 음주, 흡연은 물론이요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다.석문이 열린다. 삼성궁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숨이 막힌다. 산자락에 별천지 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수천 개의 돌탑과 맷돌, 옹기들의 탑들이 총총 박혀있다. 지리산 자락을 30여 분간 힘들게 올라와 만난 또 다른 세상. 마치 사차원의 세계로 넘어간 기분이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넓은 땅. 그 위로 수백 개의 솟대와 태극문양을 본뜬 연꽃이 녹아든 연못, 돌로 만들어진 움집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맷돌, 다듬이돌 등 우리 전통의 도구들로 가꾸어진 길과 담장의 전경이 아주 짜임새 있게 보인다.

소도 역할 돌탑 솟대 정교해

10만평이 넘는 삼성궁의 넓은 땅을 둘러보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하는 건 ‘배달길’ 이라고 쓰여진 돌이다. 이 돌을 따라 걸으면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고 궁내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현재 1,300여개의 돌탑이 있는데 이 돌탑을 쌓는 일은 수행중에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며 삼성궁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전북 진안 마이산의 돌탑과 흡사한 모양의 원추형 돌탑, 맷돌만으로 쌓은 맷돌탑, 단자로만 쌓은 단자탑 등이 완경사를 이룬 골짜기 여기저기에 솟아 있는데 그저 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신성 지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소도 역할을 하는 솟대다. 솟대의 높이는 한길 정도에서부터 10m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한풀선사가 하루 20여톤의 돌을 져 날라 20년 동안 혼자 축조한 이 솟대는 5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지금도 삼일신고의 정신에 따라 3,333개의 솟대를 세우고 있고 전국에 흩어진 맷돌을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 솟대들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 비바람이 불어도 어느 것 하나 무너진 것이 없다 하니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밖에 삼성궁에는 무예를 닦는 타원형의 놀이마당, 산책로, 환인·환웅·단군의 영정이 있는 건국전, 삼성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팔각정 등이 있다.

특히 배달길을 따라 돌다 마지막으로 궁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당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솟대와 단풍, 그리고 연못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조화는 고행의 어려움을 씻어 내기에 충분하다.그렇다면 설치미술가들도 감탄하고 돌아갔다는 이 오묘한 궁의 설계자는 누구일까. 배치와 조형미에 있어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은 한풀선사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에게서 도와 철학, 무예를 사사받은 제자만도 수백 명. 지금도 많은 제자들은 그의 수행을 따르고 있다. 수자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선식을 하고 법문을 읽거나 전통무예를 익히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설치예술가도 감탄한 신궁

그러나 한풀선사는 일반인 앞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삼성궁 최대의 행사인 개천대제날 제례를 올릴 때 한풀이춤을 보여준다고 한다. 바로 10월의 삼성궁이 단풍으로 발갛게 물드는 단풍제 기간에 천제날을 받아 ‘개천대제 열린하늘 큰 굿’이 열리게 된다. 매년 일정이 변경되니 미리 문의해야 한풀선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카락에, 빛이 나는 눈동자, 긴 수염을 가진 전형적인 도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큰 굿이 열리면 전국의 수자들이 본궁인 삼성궁으로 모여 각종 의식과 행사를 진행하게 되고, 이날만큼은 삼성궁 문을 활짝 개방해 삼성궁에서 직접 빚은 동동주도 파는 등, 누구든 마음 놓고 들어와 구경할 수 있게 한다. 풍물놀이 공연, 삼성궁 수자의 선무, 선도무예, 오방신장춤 등 고구려 악기 체험, 고대역사체험, 전통문화공연관람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지는데 기회만 닿을 수 있다면 아무라도 무예를 전수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삼성궁은 가을 단풍이 무르익을 무렵, 주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지로 추천돼 오는 코스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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