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비나리 마을은 낙동강 유역 첩첩산중에 자리잡고 있어 해발고도가 높고 바람이 거세다. 사람이 살기에 악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이 오지 마을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인정은 차고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 생활에 지친 외지 손님에게 밥 한 끼라도 대접하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정겨운 고향 냄새가 묻어난다. 때문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어린 날의 정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개천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 잡던 어릴 적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두메 산골. 익어가는 가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의 체험여행을 떠나보자. 쏟아질 듯 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비나리 마을의 밤 하늘은 어릴 적 외할머니의 품만큼이나 포근하다.

청량산을 감싸고 도는 낙동강이 35번 국도를 따라 마을 앞을 흐르는 동네 비나리의 행정명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풍호 1리다. ‘비나리’는 ‘비나루’에서 유래한 순 우리말. 그 옛날 낙동강의 수량이 풍부해 다리가 없던 시절, 이 마을은 주막이 있고 장이 서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던 나루터였다. 봉화 인근 지역의 주민이 영양, 울진 지역으로 건너갈 때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넜다. 당시만 해도 비진(飛津)으로 불렸으나, 비나루가 되고 또 비나리가 됐다. 후에 행정명이 바뀌었으나 이 마을은 여전히 인근 지역에서 비나리로 불리고 있다. 두메 산골, 비나리에 들어서면 먼저 산으로 둘러쳐진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송이 캐는 심마니 따라 트레킹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바람 소리만 가득한 비나리 마을에서의 하루를 ‘송이’로 시작해 보자. 송이를 따러 가는 길은 기분 좋은 트레킹 코스가 된다. 사실 가을 제철인 송이를 산지에서 직접 따 먹어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살아온 농부와 함께 송이를 따러 가는 기분이란 마치 심마니가 된 듯하다. 두메산골 농부의 걸쭉하고 진한 경험담은 송이의 알싸한 냄새와 섞여 마음 속 한 구석에 묻어 두었던 어릴 적 추억을 어루만진다. 비나리 마을에서 맞는 풍성한 가을은 탐스럽게 익은 사과에서도 느낄 수 있다. 붉게 물든 사과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흙냄새를 맡으며 산을 굽이돌면 어느새 달콤한 사과향이 코끝을 때린다.

청량산은 지대도 높고 일조량이 풍부해 사과가 익기에 안성맞춤이다. 사과 과수원에서 서리를 하던 때를 기억하며 아이들과 사과 따기 체험을 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가슴 속 긴 여운을 남기고 싶다면 비나리 산골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도시에서 눈에 익숙한 회색빛 큰 미술관은 그 곳엔 없다. 지역 작가들뿐만 아니라 젊은 현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는 산골 미술관은 기대하지 않았던 문화적 볼거리다. 해가 저물 무렵 가족과 함께 둘러앉은 마당,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캠프파이어도 할 수 있다. 인심 좋은 시골 마을에서의 하루는 까맣게 익어가는 고구마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누우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을 세며 아이들은 단잠에 빠져든다.

입 벌리고 갔다 입 다물고 나오는 산

다음 날은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입 다물고 나온다’는 청량산으로 향해보자. 신선의 풍모를 닮은 비경에 놀라 쩍 벌어진 입은 산을 나온 뒤에는 혹여 남에게 알려질까 꼭 다문다는 산.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산이라 불려졌던 산이기도 하다. 금탑봉을 비롯해 아름다운 봉우리 12개, 8개의 동굴, 12개의 대, 그리고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이 훌륭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등산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특히 청량산 하면 단풍을 떠올릴 정도로 단풍놀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퇴계를 비롯해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청량산에 감탄한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남아 있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 봉우리가 바위병풍을 두른 듯 산 위에 솟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 있다. 문화유산해설가로부터 공민왕과 요석공주, 몽고전에 관한 아련한 전설도 들을 수 있다. 아름다운 봉우리에 넋을 잃고 걷다 보면 어느새 순흥 땅이다. 영주시 순흥 땅은 예로부터 안동과 더불어 유교문화의 중심지다. 조선에 성리학을 소개한 안향 선생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순흥 땅에 영주의 새로운 명물이 탄생했는데 바로 ‘선비촌’이다. 전통 가옥을 테마로 한 선비촌에 도착하면 꼿꼿한 선비의 기품을 한껏 느낄 수 있는데 2만여평의 넓은 땅에 기와집과 초가집 정자·누각·서낭당 등 40여 채의 가옥이 들어차 있다. 모든 건물이 영주지역에서 현재도 볼 수 있는 오래된 전통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것이 특징. 선비촌은 이들 고택 외에도 서원선비들이 학문을 탐구하던 강학당을 비롯해 서당·연자방아·물레방아 연못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이곳에서 국궁·은장도·짚공예·투호 등을 직접 해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된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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