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1997년 12월 대한민국을 어둠속으로 몰아넣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있었다. 국민들은 IMF 구제금융에 따른 외환위기로 깊은 실의에 빠져있었다. 그 시절 박세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메이저 골프대회인 US여자오픈(1998년)에서 최연소 우승을 했다.

위기상황을 극복하며 값진 우승을 일궈낸 박세리의 ‘맨발의 투혼’은 힘들었던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어주었고, 그녀의 감동 드라마는 국민들의 팍팍한 삶 속 한줄기 빛이 되었다. 그리고 박세리는 대한민국의 국민 영웅이 되었다.

IMF 시절 박세리처럼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준 또 다른 국민 영웅들이 있다. ‘7인의 미스터트롯’이 그들이다. ‘미스터트롯’은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를 TOP7에 올리며 ‘꿈의 시청률’이라고 불리는 3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예능’의 반열에 올랐다. 트롯이 세대를 아우르며 선풍을 일으키는 바람에 ‘7인의 트롯 주인공’을 알지 못하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7인의 노래 실력은 검증되었고 손색이 없지만, 시청자를 끌어당긴 것은 무엇보다 ‘흥미와 감동’이다. 한 세대 차이가 나는 7인 모두가 평범한 서민(보통사람)의 아들이라는 점, 이들 모두가 힘든 삶에 기반을 둔 애틋한 사연을 갖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이들이 냉혹한 승부에만 얽매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할 줄 하는 훈훈한 인간미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 같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극복한 7인의 성공 스토리는 증후군 현상을 일으켜 국민들을 미스터트롯이라는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였다.

방송·영화·음악·공연 문화산업 전체를 통틀어 ‘미스터트롯’의 열풍을 넘어선 콘텐츠는 전무후무하다. 미스터트롯은 콘텐츠가 경쟁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수많은 미디어의 등장과 채널 증가, 그리고 유튜브의 활황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 이제 무색하게 되었다.

삼성SDI는 ‘미스터트롯 성공 비결 5가지’를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업종은 다르지만, 프로그램 성공 요인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성공 DNA’를 심어주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숨은 인재의 재발견, 관성에서 벗어난 변화 추구, 창조적 복제, 기본과 본질, 실패의 경험과 실패 후의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이 그것이다.

흥미와 감동은 다양한 경연방식과 공정한 평가방식에서 나왔다. 전문가, 관객, 시청자의 의견을 적절하게 반영함으로써 기존 경연의 한계와 허점을 보완하여 공정한 기회와 과정을 제시했고, 이러한 발상의 대전환은 국민 대다수가 수긍하는 ‘트롯신드롬’을 낳은 것이다.

진선미(眞善美)에 오른 임영웅, 영탁, 이찬원은 물론 7명 대부분은 무명이었다. 경연방식과 평가방법의 혁신으로 실력 있는 숨은 인재가 발탁되고, 무명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는 트롯은 중·장년층의 노래라는 선입견을 깨고 젊은 층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미스터트롯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청년층에게 도전의 미학을 제시한 것이다.

‘미스터트롯’의 성공은 정치권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보인 공천 파행은 미스터트롯과는 정반대였다. 사천(私薦), 막천(막장공천), 내 사람 내리꽂기, 돌려막기, 코드 비례대표 선발 등 불공정과 부실검증에 의한 인재영입 사고는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우리 정치권이 품격과 수준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서는 ‘미스터트롯’의 성공 비결에 따라 다양성과 공정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미 K-드라마와 K-POP은 세계 문화·예술계를 리드하고 있다. 이제 지역과 세대, 성별과 진영을 넘어 온 국민을 트로트 열풍 도가니로 몰아넣은 K-트롯의 ‘문화 한류’가 코로나19 이후를 선도하고 있는 K-스포츠와 함께 세계 속에 한층 더 빛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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