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은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서산대사가 말했듯이, 지리산을 비롯한 이 일대의 백두대간은 한국의 산 중에서 장중함과 후덕함의 대표격이다. 자연 지리가 장중하고 후덕하면 그 땅의 문화 역시 풍부한가보다. 산이 굽어보는 남원은 널리 알려진 ‘춘향전’과 ‘흥부전’의 고장. 도시 곳곳에 춘향이의 숨결이 느껴지는 관광시설이 성업 중이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이후 조성된 ‘춘향테마파크’는 특히 인기 있는 관광시설 중 하나로 5월 <춘향제> 시즌이 되면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5월 남원의 자랑은 누가 뭐래도 철쭉이다. 봉화산을 주축으로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는 분홍빛의 철쭉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철쭉길 드라이브 코스까지 있어 봄꽃 철쭉의 향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수대 대신 분홍 철쭉의 물결

봉화산(919.8m)은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이 남해 바다에 이르기 전 장중하게 꿈틀대며 솟아오른 곳에 위치해 있다. 봉화산에서 지금은 봉화를 찾을 수 없다. 다만 봉화산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1km정도 가면 도착하는 무명봉에서 ‘봉화산 봉화대’라는 팻말로 옛자취를 짐작해 볼 뿐이다. 봉화산은 비록 이름만 남았지만, 대신 5월이면 철쭉 군락이 봉수대에 횃불이 타오르는 듯 펼쳐진다. 철쭉은 4월 하순을 시작으로 5월 중순에 절정에 달해, 약 한달여 동안 선연한 붉은 빛을 자랑한다. 남원시 아영면 마을 주민들은 철쭉 개화시기에 맞추어 조촐한 산신제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성대한 행사는 아니지만 철쭉이 절정에 접어드는 5월초에 주로 열린다. 이때 쯤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상춘객들이 철쭉밭을 거닐며 산행을 즐긴다.

철쭉 군락지는 봉화산 서쪽 능선에 위치해 있다.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가로지르는 짓재에 약 500m 구간에 걸쳐 등산로와 등산로 좌우 산비탈에 걸쳐 펼쳐져 있다. 철쭉 군락지로 바로 가는 빠른 코스는 짓재마을의 ‘봉화산 철쭉 군락지’라는 이정표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은 산길을 따라 도보로 불과 20분 거리이다. 봉화산 철쭉 군락지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등산로는 철쭉 군락지를 지나 참나무 숲길에서 정상 주변의 억새평원까지 이어진다. 산행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은 백두대간 산마루를 타도 좋을 법하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장쾌하게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다. 북으로는 경남 함양과의 경계인 백운산(1,237m)이 버티고 있으며, 남으로는 아영면 고원지대 들판 너머 천왕봉(1,915m)을 비롯, 반야봉과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이 우뚝 솟아있다.

동으로는 함양에서 거창에 이르는 산하가, 서로는 장수군 번암면 일대의 산골마을 풍경이 보인다. 봉화산 산행은 어린이와 노약자를 동반해도 될 만큼 수월하다. 봉화산에는 승용차가 지나갈 수 있는 노폭의 포장도로가 정상까지 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전문 산악인들에게는 캠프 사이트, 일반 상춘객들에게는 편안한 정상 조망을 제공한다. 주위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모자를 착용하도록 한다.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나 가게가 없기 때문에 아영면 사무소가 위치한 사거리에서 먹을 것을 사가는 것이 좋다.

성리마을의 흥부집터

하산 길에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 된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이 있다. 아영면 성리마을은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 ‘춘보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풂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사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 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개마루에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금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사랑과 소리의 고장’

남원의 설화는 차로 15분 거리의 인월면 성산마을에서도 계속된다. 인월면 성산마을은 박첨지 설화가 전해져 오는 곳으로, 흥부의 출생지로 밝혀졌다. 놀부의 모델로 알려진 박첨지 묘를 비롯해 타작마당, 박첨지네 텃밭, 서당터가 자리잡고 있다. 성산 마을은 매년 삼월 삼짓날 박첨지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사랑의 남원’은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랑이야기를 낳은 곳이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춘향전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 내외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광한루원이 있다. 광한루원은 춘향과 이 도령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의미 외에 조선 궁중에서 완성된 조경문화가 민간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산물이어서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요소들로 가득한 곳이다. 특히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에 네개의 홍예로 구성되어 있는 오작교는 매우 아름답다.

그 외에도 남원은 변강쇠전의 배경이 됐던 백장암과 함께 매월당 김시습의 <만족사저포기>, <홍도전>, 현대소설 <혼불>의 배경이 이 지역과 관련, 관광지가 폭넓게 분포해있다. 남원의 명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소리’다. 광한루원에서 승월교를 건너가면 남원관광단지가 있는데 단지 내에는 실내외 공연장과 놀이공원, 영화 춘향전의 촬영장 등이 있다. 특히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다양한 국악공연을 공연하며 이곳에서 국악을 감상하고 어두워질 무렵 승월교(광한루원과 남원테마파크를 연결하는 다리)의 멋진 야경을 감상한 후 다시 다리를 건너와 광한루원 입구에서 국악연수원 방향쪽에 있는 추어탕 골목에서 인정 많은 아줌마가 끓여주는 추어탕을 한 그릇 비운다면 남원을 제대로 즐겼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여행 정보-한국관광공사>

대중교통■ 남원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아영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탄다. ■<문의 : 남원여객 (063)631-3116>자가운전■88고속도로 대구방향-지리산 I.C-좌회전 아영 방면-아영면사무소 삼거리 좌회전-8km 이동-성리 짓재마을 하차-도보 이동, 약 20분 소요문의사항■문의전화 : 남원시청 문화관광과 (063)620-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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