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한 흔적도 없고 사체에 다른 외상으로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이건 명백한 자살이에요.”

강 형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지금 강 형사와 추 경감이 있는 곳은 잠실의 고층 아파트 단지다. 일요일이라 강 형사가 추 경감의 집으로 놀러 왔다가 헤어지려고 나온 마당에 건너편 창문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 달려왔다. 

18층에서 떨어진 모양인데 사체는 처참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70대의 노인이라는 것은 쉬 알 수 있었다. 이미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는 숨이 끊겨 있었고, 그 아파트 사람들이 놀라 창 밖으로 내다보기도 하고 몇몇은 살피러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구경거리가 아니에요! 빨리 경찰에 신고를 해 주세요.”
강 형사가 고함을 질렀다. 사람들이 그 서슬에 삐죽삐죽 물러서는데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황급히 무리를 뚫고 달려 나왔다. “아이고 백부님!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사내는 시체를 붙잡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망자의 조카인 모양이다. 
“친척 되십니까?” 추 경감이 오열하는 사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뉘신지?”

사내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시경 강력계의 추 경감이라고 합니다.”

사내의 얼굴에 순간 긴장감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강력계의 분이시라면 흉악 범죄를 수사하는…….”

“예, 그렇습니다. 마침 제가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지요. 우연히 노인께서 추락하는 것을 보고 달려왔습니다만 한발 늦었군요.”
“아, 예, 그러셨군요.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사내는 추 경감의 두 손을 쥐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닙니다. 이거 치사를 받을 일은 하나도 없지요.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사건 경위를 좀 더 들어보고 싶군요.” 

그때 구급차가 도착해 시신을 수습해서 병원으로 떠났다. 추 경감은 그 사내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강 형사, 현장 조사를 부탁하네!”

강 형사는 그런 추 경감의 지시가 못마땅해 대답하지 않았다. 명백한 자살에 웬 현장 조사란 말인가. 노인은 몇 달 전에 시골에서 올라와 조카의 집에 있던 장치섭이라 했다. 장 노인은 한방을 하는 사람으로 그 동네 인근에서 뜸으로 목 고치는 병이 없다고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치료를 하던 한 사람이 숨지는 사건이 생겨 도망 치듯 서울로 온 것이었다. 병에 걸린 사람이 치료를 받다가 명이 다해 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에 죽은 사람은 그 인근에서 꽤 알려진 유지였고 그 자신이 고칠 수 있노라고 큰소리를 쳤다가 급사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돌팔이가 사람 잡은 것이 아니냐는 원망을 들었다. 

사실 장 노인으로서는 나이도 나이고 해서 은퇴할 마음을 갖고 있던 참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만사가 귀찮아져 고향을 뜬 것이다. 한약이나 침을 쓰지 않고 평생을 뜸만 가지고 살아온 몸으로 자신의 뜸 의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볼 마음도 갖고 있어 서울로 온 이래 별로 외출도 하지 않고 저술에만 몰두해 있었다. 마침 조카도 한방을 하는지라 두 사람 사이에는 활발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

그런데 사고가 난 날 아침 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인중에 뜸을 놓아 전신의 활력을 되찾게 하는 방법에 대해 조카가 이의를 제기했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장 노인은 열변을 토하며 말했다. 조카는 인중을 자극함으로써 잠재의식을 일깨워 정신병이나 기억 상실과 같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논쟁은 실습으로 이어졌는데 장 노인이 부득부득 우기며 자신의 인중에 뜸을 놓은 것이다. 그런데 뜸을 놓자 장 노인은 갑자기 정신이 나간 듯 멍한 눈초리가 되어 헛소리하기 시작했다. “이필구, 이필구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아냐 아냐. 내가 죽인 게 맞아. 이필구 이필구 저리 가라 이놈아 저리 가”
이필구는 바로 장 노인을 서울로 올라오게 한 피치료자다. 장 노인은 격렬한 몸짓으로 망령을 쫓는 듯한 동작으로 방안을 누비다가 돌연 베란다로 돌진,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상이 제가 조사한 내용입니다. 이필구의 사인을 조사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 형사가 말했다. “장 노인이 쓰던 책은 어떻게 마무리가 다 되었대?”
추 경감은 강 형사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예, 초안은 다 잡혔고 기술도 3분의 2는 된 모양입니다.” “베란다에는 보통 창틀을 달지 않나?” “날씨가 더워서 열어 놓았다고 하더군요.”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냄새를 맡지 못했나?” “예?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수상한 냄새는 전혀…….”

“아니, 그런 내용이 아니고 진짜 냄새 말이야. 냄새.”
“아니요, 선풍기는 틀어 놓았다더군요. 무슨 특별한 냄새는 전혀 못 맡았습니다.”

강 형사가 어리둥절해 하면서 말했다.
“검시의는 장 노인의 몸에서 아편이 떨어진 것을 약간 발견했다네. 자네, 그러면 뭐 짐작 가는 일이 없나?” 강 형사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이건 살인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살인이야. 일반인은 잘 모르는 한방 이론 속에 감춰진 평범한 살인이라고.”
추 경감은 씁쓸하게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퀴즈. 장 노인을 살해한 방법은?

 

 

[답변 - 3단] 장치섭 노인의 코밑에 태운 뜸의 성분의 문제였다. 그것은 약초가 아니라 아편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장 노인을 창문 밖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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