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이 뜨겁다. 정치권에 한 발 걸친 이들은 다 참전 중이다. 최근엔 여권 부동의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이 의견을 밝혔고,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의원도 나섰다. 지난 총선 때는 아예 기본소득당이란 당이 만들어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급기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마저도 애매하지만 불씨를 던졌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은 이재명의 아젠다로 알려져 있다. 진보진영에서 띄운 공을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이 잽싸게 잡아챘다. 이재명이 기본소득 프로파간다에 나서면서 그와 결을 달리하는 이들은 암묵적으로 기본소득 논의를 외면했다.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이재명에게 정치적 이득을 선사하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름값이나 일에서 이재명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박원순이 이 문제로 이재명과 대립각을 세우고 나온 것은 의외의 일이다. 박원순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전국민고용보험이 더 필요하고 더 정의롭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선별복지 강화,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나설 때라는 것이다. 나이스 샷이긴 한데 박원순은 그동안 이런 유효타를 날리는 방법을 몰랐다.

박원순이 기본소득과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정책적 논쟁 사안에 ‘정의롭다’는 잣대를 들이댄 것이 약간 미심쩍기는 하다. 아마도 사안에 대한 이해가 얕았거나 경쟁자에게 일격을 날릴 기회라 보고 순간 흥분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실행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일 뿐인 이런 사안에서 보여주는 잔 실수야말로 박원순의 가장 큰 약점이다.

박원순은 안철수와 어우러지며 스토리를 엮어 내던 정치 입문 초기 이후로는 자신의 가치를 대중 앞에 보여주는 데 실패해 왔다. 박원순이 3선을 한 것은 대안 부재였거나 정국의 영향이 컸다. 박원순이 제자리걸음하던 시간 동안 경쟁자인 이재명은 꾸준히 존재감을 과시히며 대권가도를 닦아왔다. 느닷없는 이낙연도 박원순에게는 위기감을 줬을 것이다.

박원순은 변하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보여 준 유효타 하나로 지레짐작한 것은 아니다. 박원순의 변화는 본인이 가졌을 위기감과 그에 따른 참모진의 교체, 새로운 참모들이 펼쳐 놓았을 정무적 변화의 영향이 커 보인다. 박원순의 학습능력이 뛰어난 까닭에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여권은 다 죽어가던 카드 하나가 부활하는 경사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이제 2년 남았다. 지리멸렬한 야권에 비해 여권은 탄탄한 후보군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다. 그 후보들이 하나같이 흠결이 있어 문제일 뿐. 선두주자 이낙연은 호남 출신이란 것이 장점이고 단점이다. 김부겸은 정무적 판단에서 체온이 너무 높다. 배수진을 친다면서 자신을 자꾸 외통수로 몬다. 이재명은 반문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박원순은 안철수 옆에 서게 되면서 시장이 되었던 것처럼, 이재명 반대편에 서게 되면서 다시 대권 주자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박원순은 아직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되는 법을 모른다. 박원순이 그 방법을 터득한다면 대권을 두고 벌이는 쟁투는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여권의 집권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기본소득 논쟁으로 여권의 지갑이 더 두둑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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