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9일 국회에서 “보수의 이름으로 패배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후반전 승리의 역전 드라마를 쓰겠다”며 “그걸 위해서 내 인생 중 가장 치열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보수진영의 잠룡 중의 하나로 꼽히던 그였기에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아무튼 이날 특강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장제원 의원이 대표로 있는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최소한 '비(非)김종인'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대권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날 다른 일정을 연기하고 원희룡 지사 특강을 직접 듣기위해 찾은 이유는 예전에 알던, 여의도에 떠도는 그의 최근 근황과 다른 '대통령감 원희룡'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었다. 이날 특강이 ' 원희룡의 대권 도전 선언'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보수진영 경선 도전' 수준에 머물렀다. 그의 정치(말)는 조금 더 진부해졌고, 해설적이었고, 조급함이 넘쳤다. 왠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여전했다. 그의 열정, 대권에 대한 열망만큼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의 눈빛은 특강 내내 흔들렸다. 그는 이날 본인이야말로 '보수진영의 대권후보',  '보수왕실 왕세자'임을 확인시키고자 노력했다. 

사실 원희룡 지사는 소위 전통적 보수 진영에서는 선뜻 반기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회창, 박근혜, 황교안, 나경원이 있으면 그는 항시 선택 받지 못했다. 그만큼 보수진영의 뿌리가 약했다. 모든 것이 보수진영의 취향에는 왠지 맞지 않았다.  원희룡 지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모델이 있다.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다. 

그는 원희룡 지사와 같은 서울대 출신에 비슷한 정치 입문과정을 거쳐 진영 내 비주류, 소장파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대권의 꿈을 갖기 시작하자 보수진영 내에 뿌리 내리기에 골몰했다. 그렇게 해서 경기도 지사가 되고 대권 도전에 나섰으나 경선에서 실패했다. 

그의 대권 도전 실패 원인은 '꼴통보수 김문수'였다. 민주화 운동가 출신으로 보수여당 의원이 됐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여전히 그는 '빨갱이'였다. 대권 도전에 앞서 우선 진영내 경선에서 승리, 대권 후보가 되는 것이 급하다고 판단한 그는 보수 뿌리 내리기에 전념했다. 

수도 이전 반대를 시작으로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경제발전 예찬론, 반북운동, 교과서 이념전쟁, 박근혜 탄핵 반대 및 석방 운동, 대구. 경북 정치 패권 잡기 위한 지역구 이전, 전광훈 목사 멘토 모시기 등이었다. 막말 대가 차명진 전 의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는 애교 수준이다.  그의 보수화 전략이 대략 2004년 수도 이전 반대로부터 시작됐으니 18년 만에 그는 토박이 보수 정치인보다 더 보수적인 '꼴통 보수 정치인'이 되었다. 

그러나 김문수 전 지사가 비록 보수화 전략은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정작 그의 대권 전략은 완전 실패했다. 지금 그를 대권 후보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보수진영에서 그의 상품성은 '개혁' '민주'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의 장점은 사라지고 보수진영에 널린 '꼴통 보수 정치인'으로 추락한 결과다.

원희룡 지사가 보수에 대한 애정과 찬사, 적자임을 강조하는 그의 열띤 호소를 보면서 김문수 전 지사의 길이 떠올랐다.  그는 특강 내내 소위 꼴통 보수진영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했다.

“보수는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전자”, "진보의 아류가 되어서는 영원한 2등" “외부의 히딩크 감독에 의해 변화를 강요 받는 현실" "보수의 선택은~위대한 선조의 선택" "담대한 변화를 주도했던 보수의 역동성" 등등. 보수진영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언제나 듣는, 소위 진짜 보수 감정사를 자처했던 인사들이 단골로 써먹은 보수 찬사를 똑같이 나열했다.

심지어 본인의 대권 도전 필연성조차 보수에서 찾았다. “저 원희룡은 바로 이 대한민국 현대사 압축성장의 산증인이자 대표상품으로 ‘먹튀’하면 안 되지 않냐”면서 "보수의 이름으로 패배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후반전 승리의 역전 드라마를 쓰겠다”고 주장했다.

그의 현대사에는 '보수의 결단. 선택'만 있을 뿐 '국민'과 '민주화 운동'이 없었고 21대 총선 패배 분석에서는 '실력을 인정할 수 없는 상대'만이 있었다.  김문수 전 지사가 '민주' '개혁' '서민' '국민' '미래'를 포기하고 '진짜(꼴통) 보수 정치인'이 된 것처럼 이번 원희룡 지사의 대권 도전 선언 같은 특강에도 '보수진영'이 아닌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미래 가치'는 없었다. 외눈박이 정치, 한쪽날개 정치로 지금 국가는 힘들어지고 있다. 진영 정치에 국민들은 지쳐 있다. 

원희룡 지사와 자주 비견되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소속정당인 '노동당' 노선을 진일보한 '신노동당'(New Labour). 제3의 길로, 지지층으로부터는 애매하고 흐릿해 보수당원인지 의심된다는 뜻의 '토리 블러(Tory Blur)'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했다. 국민과 국가 미래를 위해서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자파의 비난을 감수하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해 새로운, 젊은, 유능한 국가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기본소득' 주장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다. 별로 성공적인 혁신도, 대선 성공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럼에도 원희룡 지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지금 노력해야 할 것은 '보수화'가 아니다.  국민은 '보수진영'의 이쁨받는 '보수 프린스'가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의 후보 원희룡'을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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