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HDC현대산업개발 vs 더 불안한 KDB산업은행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 KDB산업은행과 HDC현대산업개발 간의 신경전이 여론전으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재점검과 재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산업은행은 직접 협상테이블로 나오라고 응수했다. [이창환 기자]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 KDB산업은행과 HDC현대산업개발 간의 신경전이 여론전으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중도 포기할 것’이라는 시장의 추측을 누르고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이와 함께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채권자 및 계약 당사자 간의 인수상황 재점검과 인수조건 재협의 등을 제안했다. 이튿날 산업은행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HDC현대산업개발을 향해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아시아나항공의 예상을 넘어선 부채비율 등 악조건에 HDC현대산업개발과 채권단 사이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해석을 내고 있다. 

 

HDC현산, 아시아나항공 인수 상황 재점검 및 조건 재협의 필요
산은, 진정성 의문 제기…“인수 의지 있다면 협상테이블 나오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지난 9일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KDB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과 계약 당사자인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에 ‘원점에서의 재점검’을 요구하며 인수조건 재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는 지난달 29일 산업은행과 금호산업 등이 HDC현산 측에 “오는 27일까지 인수 의사를 명확히 밝히라”는 경고성 문구를 담은 내용증명을 발송한 데 대한 답변으로 시작했다. 당시 산업은행 등은 HDC현산이 인수 관련 여부를 두고 정확한 입장정리를 하라는 취지로 ‘계약 연장 불가’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앞서 업계와 일부 언론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실패를 점치고 있었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의 예상을 뛰어넘은 부채비율과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계약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였다. 이에 동조하듯 HDC현산 측도 지난 3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신고 및 자금마련 절차 순항 중’이라는 입장을 낸 이후 업계의 다양한 억측에도 반박 없이 시간만 보냈다. 

아시아나항공 두고 ‘밀고 당기기’

다만 지난 4월29일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인 30일을 하루 앞두고 일자를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HDC현산은 “주식 취득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인수연기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딜 클로징(인수계약 완료)’ 시점조차 명시하지 않으면서 업계에서는 HDC현산의 상황을 다양하게 풀어냈다. 

지난 3월 4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정했던 유상증자는 3207억 원에 그치고, 1700억 원의 사모사채까지 끼워 넣으며 자금을 마련에 나섰던 상황에 HDC현산의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평이 나왔다. 또 공모채 발행과 은행권과의 인수 금융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4월3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건에 대한 승인이 나고도 이를 실행하지 못한 데는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몰고 온 유동성 위기 등 항공업계의 경영악화 여건도 있었으나, 일각에서는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에 당장 추가되는 부채까지 떠안고 갈만한 여력이 없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동시에 나왔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최근 진행했던 아시아나항공, 대우건설, KDB생명 등 대형 매각 프로젝트 가운데 순탄하게 이뤄진 것이 없었다”며 “여론의 질타와 부정적인 해석들이 나오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코로나19가 항공업계에 직격탄을 날리며 국제선 운용률이 2%대에 그치는 등 전체적으로 90%가 넘는 항공기가 날개를 펴지 못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며 “인수를 앞둔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상황 등 구제를 위해 1조7000억 원이라는 대규모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이 HDC현산 측에 내용증명을 보낸 것도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를 직접 확인하고, 조치가 필요할 경우 차선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다.

HDC현산,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 1만6000% 넘어

이와 관련 HDC현산 측은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에 비해 지난해 말 기준 2조 8000억 원의 부채가 추가 인식되고, 최근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무려 4조5000억 원 증가되면서 부채비율은 2020년 1분기 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다”며 “자본총계 또한 1조772억 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4월21일 아시아나항공이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긴급자금 1조7000억 원 추가 차입 및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및 정관 변경과 임시주주총회 등을 통보했는데, 산업은행은 사전 동의 없이 이사회에서 추가자금 차입을 승인하고 이어 24일에는 법률적 리스크가 상당한 계열사에 총 1400억 원 지원도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 3월 외부 감사인의 아시아나항공의 내부회계 관리에 대한 부정적 의견에 대해 HDC현산은 재무제표 신뢰성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확정을 위한 국제회계기준(K-IFRS) 재무제표 및 계약 체결 이후 4조5000억 원 이상으로 증가한 부채의 계약 당시 본원가치 회복을 전제로 계속기업 존속 방안 마련을 요청했다. 합리적 재점검과 인수조건에 대해 원점에서의 재협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산업은행은 “HDC현상의 제시조건은 이해 관계자 간 협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서면으로 논의 진행에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산 측이 서면을 통해서만 논의를 진행하자는 의견에는 자칫 진정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효율성 제고 등의 차원에서 이해관계자간 논의가 진전될 수 있도록 현산 측이 먼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공문발송이나 보도자료 배포가 아닌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