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학원 강의를 시작한 지 1년 된 40대 강사 한병태는, 자유당 정권 당시 시골의 작은 읍으로 좌천을 당한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게 되었고 병태도 전학을 한다. 초라한 소도시 국민학교에서 우월함을 뽐내고 싶었던 병태는 담임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의 무관심 속에 금세 방치되었고, 급우들의 절대적인 맹종을 받던 교활한 독재자이자 급장인 엄석대에 의해 기존의 가치관조차 흔들리는 상태를 맞이한다.

기에는 병태도 석대를 이겨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고 각오하고 대적해 보지만, 석대의 보이지 않는 힘은 병태를 초라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점점 성적도 떨어지고 학교의 말썽꾸러기로 외롭게 전락할 무렵, 유리창 청소 사건을 계기로 병태는 석대의 ‘힘의 제국’ 안으로 편입된다. 석대는 곧바로 병태를 권력의 단맛으로 길들이기 시작했고, 병태는 가끔 반전을 꿈꿔 보지만 결국 혼자만의 저항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권력에 편승하여 엄석대 왕국의 충복으로 남게 된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에게 정직, 진실, 용기에 대한 신념을 심어 주려 노력하는 젊고 유능한 김 선생님이 부임한다. 김 선생은 엄석대가 학급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눈치채고 모두 똑같은 친구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상화를 시도한다. 눈치 빠른 석대는 김 선생님의 견제 속에 스스로 만들어 온 자신만의 왕국을 사수하고자 노력한다.

결국, 석대가 시험지 바꿔 쓰기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되자, 급우들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석대의 비행을 고자질하지만 충복인 병태만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 후 사회인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병태는 석대에 대한 일종의 향수마저 느낀다. 그러던 중 피서길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에 붙들려 가는 엄석대와 마주치게 된다. 영화로도 인기를 얻었던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줄거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등 원구성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야당 몫으로 배분되었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법률에 없는 내용이다.”라는 민주당 측과, “야당이 맡는 것은 ‘전통’이자 ‘관행’이었고 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동일하게 주장했다.”는 통합당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래통합당과 합리적 협상을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 입장을 반드시 결행해야 한다. 아무리 통합당이 시간을 끌고 발목을 잡으려고 해도 21대 국회 민주당의 작심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본회의 강행 의지를 밝혔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협상은 없고 협박만 있었다.”고 비판하며 “제헌국회 이후 20차례 개원에서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상임위원장을 뽑는 것은 처음으로 우리 헌정사에 남을 오점이자 폭거가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야당도 없고, 민주당 1당독재밖에 없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소설에서 민주체제로의 가능성이 없었던 학급 환경은 새 담임인 김 선생님에 의해 변혁이 일어났고 절대 권력을 구축했던 엄석대 체제는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석대의 권위와 횡포가 급우들 자체 힘에 의해서 붕괴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즉, 정직, 진실과 용기를 강조했던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급우들의 자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학급은 오랜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혼란스러웠지만 새로운 체제 하에서 점차 민주적 질서를 회복해 나간 것이다. 

지난 4.15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바뀌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벗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국민과 진보, 보수의 낡은 진영논리를 떠나 정직, 진실과 용기를 강조하는 선량한 국민들로 주류가 바뀌었다는 공감대가 크다. 좋은 ‘전통’도 이득을 얻는 세력에 의해 남용되면 ‘악습(惡習)’으로 변질된다. 어느 세력이든 악습을 자행하다가 뒤바뀐 주류 국민의 손에 의해 잘못을 깨닫고 변화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