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문화를 제대로 보려면 진도여행의 백미인 운림산방을 들러야 한다. 첨찰산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운림산방은 전통 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던 이곳 화실은 분명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었을 것이리라. 소치는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지만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 서, 화에 능해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리기까지 하니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나 그의 스승이었던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바로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한다. 후에 소치 집안에서 시작한 그림은 지금까지 국전 이상자가 무려 150여명을 넘을 정도로 놀라운 화맥을 구축하는 등 한국 남화의 최고를 자부한다.운림산방 연못 가운데의 둥근 섬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나무와 상록수림들의 조화로운 자연미가 곁들어져 운치를 한껏 더해준다. 쌍계산 사찰 쪽 계곡의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맑고 시원한 물줄기는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과 어울려 애환과 풍류를 함께 흘려보내는 듯하다.

숲 속 계곡 찬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세상 잡념에 찌든 텁텁한 머릿속 잔여물들이 맑게 씻겨나가는 기분마저 든다. 서쪽 끝머리인 지산면 세방리는 기상청이 한반도 최서남단의 가장 전망이 좋은곳으로 선정한 세방낙조로 유명하다. 이곳은 진도 앞바다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다도해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갈 듯한 낙조의 장관은 그야말로 환상과 감탄의 극치에 차 오르게 만든다. 세방리 낙조 전망대에 서면 울돌목을 돌아나온 거세고 강렬한 물살이 다시 진도남단 팽목으로 휘감아 흐르는 것이 보인다. 섬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이 마치 깊은 산속의 계곡물처럼 여울진다. 해무에 지워졌다가 불쑥 나타나곤 하는 세방리 앞바다의 모양도제각각인 크고 잠은 섬들. 이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떨어지는 낙조는 신비롭기만 하다. 원래 여행이란 돌아가는 길이 지루한 법. 그러나 세방낙조는 돌아가는 길까지 심심치 않게 좋은 볼거리로 배려하고 있으니 바로 청정해역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즐기는 드라이브 코스는 육체의 피로와 근심, 걱정을 모두 다도해의 푸른 물결 속으로 사라지게 한다.

진도에는 굽이굽이 힘차게 여울졌던 전쟁 유적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이 유난히 많다. 세방리를 빠져 다시 남쪽으로 돌아나가다 만나는 임회면 남도리에는 바다를 마주한 남도석성도 그 중에 하나. 진도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 할때에 먼저 가리킴직한 곳이 불멸의 충혼이 서려있는 남도석성이다. 이 성은 고려 원종 때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최후를 마친 곳이다.섬이 가로막은 터라 바다 쪽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지만, 높이 185m의 남산을 낀 마을에서는 산을 오르면 바다 전체가 한눈에 들기 때문에 이 마을을 남해안의 군사 요새로 썼던 듯하고 그런 이유에서 남도 석성도 쌓았음직하다. 크기가 비슷한 돌을 차곡 차곡 쌓아놓은 남도석성은 보기에도 짜임새가 뛰어난 성임을 알 수가 있다. 담쟁이덩굴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이 성은 돌로 쌓아졌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이 아주 잘되어 있는 것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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