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한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아침바람에 가을이 저만치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대낮에는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걸 보면 아직은 여름이 지나간 것은 아니다. 바로 이즈음이 여름과 가을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선선한 아침에는 트래킹과 등산으로 초가을 정취를 느껴보고, 후덥지근한 오후에는 시원한 계곡물에서 물놀이로 여름을 즐기는 것이 이맘때의 휴가법이다. 그러나 이런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변산반도는 채석강과 내소사만이 알려졌을 뿐, 가을여행지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는 변산반도를 가로지르는 외·내변산을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직소폭포와 원불교 성지 등을 비롯해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호남의 5대명산 ‘내변산’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의 내변산은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고도 불렸다. 오늘날 내변산을 이루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내변산의 산군(山群)은 독립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호남정맥과 내변산 사이에 광활한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내변산의 최고봉은 의상봉(509m)이다. 의상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옥녀봉, 쌍선봉, 신선봉 등 해발 400m대의 봉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해발고도는 별로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서해안 바닷가와 맞닿아 있어서 백두대간의 어느 산줄기 못지않게 산세가 웅장하고 골짜기도 제법 깊다. 특히 20m 높이의 직소폭포에서 분옥담과 선녀탕을 거쳐 변산 제일의 절승이라는 봉래곡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그야말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그래서 일찍이 내변산은 조선팔경의 하나이자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혀 왔다.내변산의 등산코스에서는 최고봉인 의상봉이 제외된다. 정상에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사실 의상봉은 부안댐의 완공 이후 호수로 변한 중계계곡의 북쪽에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내변산 등산코스에 포함되기도 어렵다. 의상봉 대신에 내변산 봉우리들의 좌장(座長) 노릇을 하는 것은 쌍선봉이다. 더군다나 쌍선봉에서 약 500m 떨어진 산등성이에는 천년고찰 월명암이 자리잡고 있어서 등산객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끊이질 않는다.우선 직소폭포와 폭포 가는 길은 볼거리로 풍성하다. 이 길에는 분옥담, 선녀탕, 봉래 계곡 등의 다양한 관광자원들이 풍부하다. 선녀들이 이곳에서 목욕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선녀탕이나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물웅덩이들은 마치 만들어진 것처럼 하나 같이 독특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한줄기 물이 내리 꽂히는 직소폭포의 모양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절경이다.이 모든 광경은 내변산에서 직소폭포로 향하는 길에 만날 수 있다. 산행치고는 거리가 꽤 긴 편으로 어른 걸음으로 왕복 2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736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사자동’이라는 동네에서 좌측으로 꺾어 가다 보면 이 산행 코스로 진입할 수 있다. 힘들더라도 폭포의 장엄한 모습 앞에 후회가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코스는 내소사에서 올라오는 산행 코스와도 만나게 되어 있는데 내소사에서 출발하는 것은 더욱 더 힘들다고 한다. 내소사를 거쳐 직소폭포를 보고 월명암까지 가려면 하루 종일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좀더 쉬운 산행을 원한다면 우선 직소폭포까지 가고 내소사나 월명암은 다시 그 입구에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선녀탕과 직소폭포 둘도없는 절경

월명암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이다. 내변산 매표소에서 봉래곡을 거쳐 올라갈 수도 있고, 남여치 매표소에서 곧장 비탈길을 거슬러 오를 수도 있다. 대체로 내변산 매표소를 출발해 봉래곡과 월명암을 거쳐 남여치로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총길이가 5.5㎞ 가량 되는 이 코스는 느긋하게 걸어도 2시간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트래킹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관음보살을 모신 월명암은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고승들이 세운 여느 사찰들과는 달리,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2년(692)에 ‘부설거사(浮雪居士)’라는 재가불자(在家佛子)가 창건했다. 월명암이라는 이름도 부설거사와 그의 부인 묘화 사이에서 태어난 딸 ‘월명’(月明)에서 따왔다고 한다.

월명암은 창건 이래로 많은 수난을 겪어 왔다.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졌다가 진묵대사에 의해 중수되었고, 구한말에 의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1908년에 다시 불타고 말았다. 이후 1914년에 학명선사가 다시 세웠으나,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발생한‘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소실되었다. 오늘날의 월명암에 들어선 건물들은 모두 근래 지어진 것이다. 그래서 천년고찰다운 고풍스러움이 별로 묻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것은 내변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전망이 탁월하고, 암자까지 이어지는 숲길의 운치가 매우 그윽한 덕택이다. 특히 내변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부안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에 반쯤 잠긴 풍경은 ‘월명무애’(月明霧靄)라 해서 변산팔경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해마다 8월 하순부터 9월 초순까지면 암자 주변에 노란상사화가 만발한 장관도 감상할 수가 있다.

월명암은 운치 탁월한 내변산 전망대


월명암에서 남여치 방면으로 300m쯤 가면 월명암 삼거리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왼쪽 길로 200m를 더 올라가면 낙조대에 도착한다. 변산면 소재지인 지서리와 변산 앞 바다에 떠 있는 하섬과 고군산 군도, 서남쪽으로는 영광 부근의 칠산어장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조망이 탁월한 곳이다. 우리 나라의 여러 낙조대 가운데 전망이 가장 좋고 일몰 광경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낙조대에서 해넘이를 감상하면 월명암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하산해야 된다. 그런 점이 부담스럽다면 외변산 바닷가에서 일몰을 맞이하는 게 좋다. 외변산에는 일몰 감상포인트가 즐비하다. 북쪽으로는 새만금간척지의 방조제 입구에서 남쪽의 모항 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바닷가가 다 일몰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솔섬 일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낙조 광경은 서럽도록 아름답다.솔섬 낙조를 감상하려면 전북학생해양수련원의 정문을 통해 바닷가로 나가야 한다. 솔섬은 몇 그루의 소나무만 자라고 있는 작은 무인도이다. 썰물 때에 바닷물이 많이 빠지면 뭍과 연결되기도 한다. 솔섬 오른쪽에는 궁항 포구의 등대가 아스라이 보이는데, 이 등대와 솔섬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여름철의 일몰 광경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