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의 회문산(830m) 일대는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워낙 외진 곳이어서 외지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나 빨치산 출신의 작가 이태씨가 1988년에 펴낸 실화소설 <남부군>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로 이곳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북도당 유격대사령부’(빨치산 전북도당사령부)가 자리 잡았던 회문산이 소설의 주요무대이기 때문이다. 이후 1993년에는 회문산 장군봉 아래의 87만 평 부지에 회문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됨으로써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부쩍 늘었다.

소설 <남부군>의 주무대

회문산은 산세가 험하고 골짜기가 깊다. 더욱이 서쪽을 제외한 삼면으로 섬진강과 구림천이 굽이쳐 흐르는 천혜의 요새이다. 그래서 구한말에는 의병들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에는 지리산과 함께 최대의 빨치산 근거지였다. 당시 이곳의 울창한 숲에는 ‘사령트’라 불렸던 전북도당 유격대사령부와 빨치산 간부들의 정치학습장이던 ‘노령학원’이 자리잡았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 700명 이상을 헤아렸다는 회문산의 빨치산들은 투구봉 전투에서 국군 토벌군에게 크게 패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결국 생존자들은 1951년 3월 2일 밤에 각기 두 개 조로 나뉘어 소백산맥과 변산반도 방면으로 탈출했다.

이로써 회문산 빨치산의 시대도 종막을 고하게 됐다. 회문산자연휴양림은 이처럼 분단과 이념대립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현장에 조성됐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울창해진 숲에는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등의 숙박시설을 비롯해 정자, 전망대, 잔디광장, 산책로, 출렁다리, 야외교실, 물놀이장, 어린이놀이터, 약수터 등의 각종 편의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휴양림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계곡에는 사시사철 맑은 계류가 흘러내린다.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그리고 쉼 없이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방문객들로 하여금 한없는 평화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비목공원과 빨치산 사령부의 옛터에서는 잠시나마 숙연한 분위기에 젖을 수밖에 없다. 이념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하게 숨져간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암괴석과 조화로운 섬진강

회문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구림천의 물길은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에서 섬진강에 합류된다. 이 부근의 섬진강은 흐름이 더디고 수량도 많지 않아 보인다. 불과 십여 리쯤 떨어진 상류에서 섬진강댐이 물길을 가로막은 탓이다. 일중리를 지나온 섬진강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고향인 장산(진메)마을 앞에 이른다. 이 마을에서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거쳐 순창 장군목(또는 장구목)에 이르는 물길은 500리에 이르는 섬진강 중에서도 가장 향토적이고도 자연미 넘치는 풍경을 연출한다. 강물은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 뵐 정도로 깨끗하고, 강물 따라 이어지는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특히 산자락과 강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빚어낸 섬진강의 풍광은 순창군 동계면 내룡마을의 장군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장군목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기기묘묘하게 움푹 패인 바위들이다. 진짜 요강처럼 생긴 요강 바위를 비롯해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강줄기를 따라 3km 정도나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일부러 조각해 놓은 듯 섬세하고 정교하지만, 실은 수천수만 년의 세월 동안 강물이 쓰다듬고 어루만져 태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높이 2m, 폭 3m에 무게가 무려 15톤이 된다는 ‘요강바위’는 어른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바위는 한때 수 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도난당하기도 했으나,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제 자리에 돌아온 뒤로는 여전히 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오색단풍에 수채화 연상시켜

장군목 주변의 강변과 마을 풍경은 마치 시간을 30~4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강바람에 하늘거리는 미루나무가 있고, 때로는 물길도 되고 사람 길도 되는 길이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강기슭에는 산자락이 내려앉고, 강물은 산허리를 끊임없이 어루만지며 흘러내린다. 처음 찾은 사람들도 언젠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처럼 아늑하고 따뜻하다. 이곳이 <아름다운 시절> <춘향뎐> <이것이 법이다> <허준> 등 영화나 TV드라마의 주요 촬영지가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장군목을 지나는 섬진강은 강폭이 넓고 수심도 비교적 얕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텐트를 치고 천렵이나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다. 그리고 가을철이면 강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꽃과 산비탈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오색단풍이 서로 어우러져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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