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생명력, 이집트]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일요서울 |  프리랜서 이정석  기자] 우리는 흔히 강을 '생명의 젖줄'이라 표현한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상투적인 수식어를 몸으로 체감해 본 적은 없다. 강이 없더라도 나무와 풀이 빽빽한 풍경에 익숙한 탓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나일 강은 말 그대로 생명의 젖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북 아프리카 사막을 뚫고 굽이쳐 흐르는 초록의 생명력. 이집트 여행은 미처 체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됐다.

나일 강은 이집트의 생명수다. 국토의 90%가 사막이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10%에 불과한데 강이 그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나일 강은 길이 6671k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가장 긴 강은 남미의 아마존 강으로 7062km에 달한다). 나일 강의 발원지는 세 곳이다. 아프리카 적도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는 청나일, 그리고 아트라바 강이 합쳐져 북쪽의 지중해로 흘러나간다. 지금으로부터 4600년 전, 고대 이집트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나일 강 덕분이다. 마르지 않는 강물과 비옥한 토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68년 아스완 댐이 생기기 전까지 수천 년간 나일 강 하류는 매년 수해를 겪어야만 했다. 6월경 에티오피아 고원에 많은 비가 내리면 8월 즈음엔 나일 강이 범람했다. 심할 땐 수위가 최대 15배까지 올라갔고, 강폭도 20배나 넓어졌다. 하지만 유속이 빠르지 않아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일 실트(Nile Silt)라 불리는 기름진 흙이 대지를 뒤덮어 매년 풍요의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연히 농사는 풍년이었고, 물 밖으로 다시 나온 땅을 구분하기 위해 수학이나 측량술 등이 발전하게 됐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Sightseeing

나일 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그래서 상류인 남쪽을 상 이집트, 하류인 북쪽을 하 이집트라 부른다. 모든 유적지는 이 나일 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따라서 크루즈를 이용하면 가장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북쪽의 카이로부터 남하하며 여행을 시작해 보자.

카이로 (Cairo) 기자 피라미드 & 스핑크스 (Giza Pyramids & Sphinx)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고대 이집트인들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생명으로, 해가 지는 서쪽을 죽음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일 강 동쪽에는 왕궁 등 거주지가, 서쪽에는 피라미드 등 무덤이 자리했다. 카이로 서쪽 사막지역인 기자에도 3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중 대 피라미드로 불리는 쿠푸 피라미드는 기원전 2600년 쿠푸(Khufu) 왕의 지시로 건설됐다. 현존하는 70여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다. 쿠푸 왕의 그리스 이름을 따 케옵스(Cheops)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무려 146m. 하지만 꼭대기 부분이 파손돼 실제 높이는 136m이다. 밑변은 230m이며 2.5톤의 석재 230만 개를 쌓아 만들었다. 20년에 걸쳐 기울기 51도의 완벽한 구조로 완성됐다. 사실 이들 건축물을 직접 보기 전에는 나열된 수치들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생명의 젖줄’처럼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거대한 무덤을 마주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 인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생을 위해 이토록 어마어마한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쿠푸왕의 권세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신이라 여겼기에 가능했을까? 쥐꼬리만 한 권능도 없는 기자에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득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피라미드 내부로 향했다. 허리를 숙여야만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경사진 통로를 따라 올라간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