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동쪽으로는 순천만 건너에 여수반도가 뻗어 있고 서쪽에는 보성만을 끼고 보성군, 장흥군, 완도군을 마주보고 있다. 고흥반도와 그 주변에 널린 수많은 섬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려야 고흥읍내에 닿을 수 있는 먼 거리다. 순천-벌교-고흥을 잇는 길은 4차선으로 늘어나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고흥에 다다르기 전에 마음은 벌써 지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한하운 시인의 ‘소록도 가는 길’마저 없었다면 지루하기까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고흥하면 한센병 환자의 집단지인 소록도가 우선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소록도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곳에 산재해 있는 명소가 눈 시린 늦가을 정취를 자아낸다. 우선 고흥읍내를 비껴 유자마을(풍양면 한동리)을 찾는다. 11월이면 노랗게 익어 향내를 풍기는 유자공원이 녹동항 가는 27번 국도 변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변에 유자공원이라는 팻말이 크게 붙어 있고 도로변을 사이에 두고 특산물 전시장과 유자밭이 나뉘어져 있다. 우선 유자공원이라는 팻말을 따라 유자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사방팔방 펼쳐지는 유자밭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자 생산지는 고흥, 완도, 남해, 거제, 통영, 고성 등. 특히 고흥군이 우리나라 전체 유자 생산량의 30% 가량을 차지할 만큼 유자 재배농가가 많은 것은 기후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유자 농사는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유자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해서 유자나무는 대학나무로도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유자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남해안 일대에는 유자밭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유자값도 폭락, 올해는 유자축제 계획도 접었다. 대신 유자밭 사이사이로 석류를 심었다. 노란 유자와 붉은 석류, 그리고 감까지 뒤섞여 나름대로 운치 있는 산책로다.

작은 사슴 닮은 섬, 소록도

유자공원을 비껴 조금만 가면 녹동항과 만난다. 5분 거리에 소록도가 있어서 찾는 이가 많은 항구여서인지 여전히 활기가 느껴진다. 건어물, 싱싱한 어시장 등등. 자연산 회를 모양없이 썰어 주는 초장집에 자리잡으면 어느새 고흥의 하루가 마감된다.어부들이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의 생생한 경매를 보며, 소록도 배에 올라도 좋다. ‘나환자촌’이라는 선입견을 떠나서 소록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작은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중앙공원 곳곳에 남아 있는 아픈 옛 과거를 떠올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유난히 맑은 가을하늘에 빠져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고흥엔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우주기지국 공사가 한창인 나로도 여행도 좋지만 고흥 여행의 백미는 팔영산(608m)을 비롯한 인근 해안 마을을 찾는 일이다. 고흥읍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진 소백산맥의 맨 끝 부분에 위치한 팔영산은 8개의 봉우리가 남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있다.

1봉에서 8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종주 산행의 묘미도 각별한데 가장 최단 거리는 팔영산 휴양림을 통하는 방법이다.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날이면 낙조까지 보고 내려와도 좋다. 휴양림까지는 하산길이 짧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400고지 정도에 자리 잡은 시설 잘 된 휴양림(영남면 우천리)에서 하룻밤을 유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팔영산 산막의 하룻밤은 이튿날 몸이 개운해진다는 것을 절감케 할 정도로 청신한 기운을 내뿜는다. 단풍든 활엽수가 우수수 낙엽을 떨구어 내는 날이면 더욱 늦가을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산막을 비껴 찾아갈 곳은 점암-남열리를 잇는 해안길이다. 이곳 해안길에서는 아름다운 일출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해안길은 예전 비포장이었다가 최근 들어서야 포장이 된 오지마을. 특히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용암마을(영남면 우천리)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언덕받이 위에서 바라본 용암마을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마을 앞에 떠 있는 섬을 비롯하여 그 뒤로 한없이 펼쳐지는 바닷가가 어우러진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용바위는 마을을 비껴서 우측 해안가로 들어서야 만날 수 있다. 검은 빛이 나는 바위. 해안절경이 빼어난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고흥반도에서는 보기 힘든 바위다. 마치 제주도의 용바위 해안이나 고성의 상족암을 연상케 한다. 제주도보다 침식이 작아서 아름다움이 덜하다고 할 수 있지만 상족암의 공룡 발자국처럼 바윗돌은 움푹움푹 패여 있다. 3~4분 안으로 들어서면 용이 승천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곳은 용이 바다로부터 용바위를 발판삼아 등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용바위 우측에는 용이 살았다는 용굴이 있으며 용굴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10리 밖으로 듣고 일기를 점쳤다고도 한다. 용이 승천했다는 바위는 50m의 깎아지른 절벽과 약 600평 정도의 넓고 평평한 천연 바위가 깔려있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격이다.

용굴 파도소리로 일기 점쳐

이곳에서 사자바위-남열-영남면으로 이어지는 길로 해안드라이브를 떠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묘미다. 넓게 펼쳐지는 바다는 위태로운 운전만큼 아찔하고 스릴 있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해안드라이브는 아직까지 사람 손때가 묻지 않은 오지중의 오지이다. 돌아나오는 길목에서 잠시 팔영산 자락에 있는 능가사를 거치면 된다. 능가사는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혔다. 이 절은 삼국시대 아도화상이 세웠다 하나 정확지는 않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22년(1644년)에 정현대사가 다시 세운 후 능가사라고 했다. 정현대사의 제자들도 뒤를 이어 중창불사를 계속하여 법당과 요사채들을 보면 당시 능가사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 능가사에 들어서면 사천왕문과 대웅전, 요사채, 응진당이 차례로 있다.아쉬움을 접고 고흥을 빠져 나오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잠시 남양면 중산리에 발길을 멈추면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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