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음에도 백제를 기억하는 우리의 가슴은 시리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도 잃어버린 왕국의 한을 침묵으로만 버텨왔다. 화려한 신라의 도읍 경주와 달리 빛바랜 사진 속 추억으로만 남아 있던 부여. 영영 잠들 것만 같던 백제사가 한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긴 세월동안 감춰 두었던 백제의 속살과 마음을 여행객들에게 이제야 비로소 드러낸 부여는 찬연했던 과거의 그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부여 여행골목에서 만나는 역사들은 모두 백마강 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다. 백제 패망의 아픔을 간직하고, 오랜 세월을 침묵으로 보냈던 충남 부여에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그 시대 선조들의 혼과 숨결이 집약된 백제금동대향로와 정림사지 5층석탑과 같은 국보 5점을 비롯해 사적지와 문화재가 183점이나 곳곳에 흩어져 있다.

드라마 ‘서동요’로 뜨다

아름다운 고장 사비의 땅, 부여로 가는 길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훨씬 수월해졌고 경승지들이 모두 시내에서 가까이에 있어 굳이 차를 타지 않고도 걸어서 답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조금만 다리품을 팔면 진귀한 보물들을 만날 수 있기에 더욱 매력 있는 여로다. 부여에 들어서면 거리가 온통 ‘서동요 세트장’ 안내 천지다. ‘드라마가 뜨면 관광지로 뜬다’더니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백제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서동요’의 오픈세트장이 위치해 있는 곳은 충화면 가화리로 부여읍내에서도 40여 분쯤 달려야 나온다. 정겨운 풍경들이 지나가는 시골길을 내달리며 감상에 젖다 작은 저수지 둔덕에 햇살이 반사되면서 그림 같은 옛 풍경이 언뜻 지나가면 드라마 장면에서 많이 본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많은 사람들, 이미 주차장은 관광객들을 싣고 온 차량들로 채워지고 있다. 세트장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드라마와 똑같네.” 서동요의 세트장은 1만평의 터에 초가 18동과 기와집 24동 등 모두 42동의 가옥이 지어져있고 신라의 궁궐, 애연지, 하늘재, 태학사, 저잣거리 등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건물들이 실제와 같은 크기로 복원돼 오밀조밀 모여 있다. 실제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도 무방하리만큼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관광객들의 평도 이어진다. 담장도 흙벽으로 마무리한 이유는 부여군에서 처음부터 백제를 테마로 한 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연못 ‘궁남지’

드라마 ‘서동요’의 촬영지 중의 하나인 ‘궁남지’는 부여여행의 백미로 손꼽힌다. 백제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수준 높았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기에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자, 무왕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는 궁남지는 ‘삼국사기’에서 ‘물을 20여 리나 되는 긴수로로 끌어들여 주위 물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물속에 섬을 쌓아 방장선산을 본땄다’고 기록되어 있다. 빼어난 조경미로 선화공주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한 ‘사랑의 연못’으로 더 유명한 ‘궁남지’는 사계절 인기 있는 곳이다. 마치 꿈길을 걷듯 연못과 야생화가 가득 뒤덮은 여름철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굳이 연꽃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둥글게 늘어선 버드나무와 포룡정을 잇는 고풍스런 나무다리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광은 감탄사를 흥얼거리게 한다. 다리를 건너 포룡정에 앉아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 옛날 선화공주와 서동의 절절한 사랑이 수면에 새겨진다.

궁남지에서 나와 차로 5분 정도만 가면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제의 흥망을 지켜보며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도 만날 수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가 멸망해 간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1,400년을 버텨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백제 석탑의 완성미와 조형미가 깊게 새겨져 있다. 부여의 답사 1번지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이라고 할 만큼 귀중한 백제의 역사가 묻혀져 있는 곳이다.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전쟁 시에는 최후성곽으로 이용된 부소산은 ‘낙화암’을 비롯해 ‘고란사’, 곳곳에 남아 있는 토성, 영일루, 사자루, 삼충사 그 외에도 군창지, 서복사지 등 수 많은 경승지를 품고 있다. 부소산 경승지를 다 둘러보는 데는 2시간 남짓. 산성 안으로 들어가는 산책로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운치가 있기에 더욱 편안하게 백제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삼충사 산책로 ‘으뜸’’

매표소를 지나면 갈림길에 서게 된다. 영일루 고란사와 낙화암만을 보고 돌아올 요량이라면 좌로, 부소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삼충사 방향으로 산책로를 잡는 것이 좋다. 백제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때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성충, 흥수, 계백장군 등 삼충신의 위국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삼충사와 영일루, 군창지는 여행지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길 또한 자연을 벗 삼아 올라갈 수 있기에 더욱 좋다. 따사로운 봄 햇살 받으며 걷노라면 옛이야기들은 어느새 까마득히 멀어져 간다. 어느새 백제흥망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낙화암이 저만치서 고개를 든다. 낙화암(落花巖), 꽃들이 떨어진 바위. 이름처럼 슬픈 역사를 간직한 낙화암은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우뚝 솟아 있다.

백제가 무너지던 날, 바로 이 자리에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삼천궁녀가 스스로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이다. 훗날 그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낙화암에 세워진 백화정에 서서 휘돌아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원한 강바람에 날린 옛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백마강에서 자세히 바라보면 절벽 색깔이 붉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슬픈 전설도 남아 있다. 빼어난 백마강 전망을 감상하면서 낙화암에서 내려가다 보면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고란사가 나온다. 고란사는 약수로 더 유명하다. 한 모금만 마셔도 3년이 젊어진다는 고란약수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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