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산 황매화야 보는 이 없어저 혼자 피고 진들 어떠하리만학바위 기묘한 경 보지 않고서조화의 솜씰랑은 아는 체 마라노산 이은상의 시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전남 장성 백암산의 봄과 가을은 호남의 어느 산보다 으뜸이다. 진녹색의 물감을 풀어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홍색으로 갈아입은 듯한 백암산의 변신은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만나게 한다.




장성은 오랜 옛날부터 ‘유림의 고장’으로 불리던 곳이다. 따라서 지금도 장성 지방 곳곳에는 필암서원, 봉암서원, 고산서원 등과 같은 서원들이 남아있으며 요월정, 청계정, 관수정 등을 비롯한 많은 정자들이 산재해 있다.최근 들어 장성은 ‘홍길동의 고장’으로도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허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홍길동도 있지만 장성은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었던 홍길동이 태어난 고장이다. 15세기 중엽, 홍길동은 아치실(현재의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가터 주변에는 기념관과 길동샘 등이 있으며, 해마다 어린이날을 전후해 이 일대에서 홍길동 축제가 열린다.

‘백양사(白羊寺)’는 득도 사찰

백암산은 해발 741.2m의 상왕봉을 최고로 내장산, 입암산 줄기와 연결되어 연중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백암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하얗고 거대한 바위는 ‘학바위’라고 불린다.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모습을 했다고 해서 학바위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흰 맛, 날카로운 맛, 맑은 맛, 신령스러운 맛이 있다고 하였으며, 계절에 따라 그 색이 변한다. 붉게 물든 단풍과 파랗게 펼쳐진 비자림이 함께 어우러져 가을 내장산의 명성을 잊게 하는 경치로 이름난 백양사는 백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백양’이란 이름을 얻게 된 유래도 짚어볼 만하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 여환선사가 백암산 백암사로 명명한 이후,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선사가 정토사로, 선조 7년(1574년) 백양사로 바뀌었다.

지완선사가 영천굴에서 법화경을 예불할 때마다 백학봉 밑에 사는 흰 양 한마리가 암자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선사의 법화경을 다 듣고 돌아갔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선사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스님의 독경소리에 깨달음을 얻어 축생의 몸을 벗고 이제 사람의 몸으로 환생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라고 절하며 물러났다. 선사는 이를 이상히 여겨 다음날 아침 뒷산을 산책하던 중 흰 양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꿈을 이해했다는 전설이다. 이때부터 절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라 고쳐 부르고 선사의 법호도 지완에서 ‘환양(喚羊)’으로 바꾸었다고.

수목과 산천어 ‘가득’

백암산의 깊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 4개 시, 군·구의 농토를 적셔주는 젖줄 구실을 하고 있는 장성호도 둘러볼 만하다. 최근 들어 장성호는 낚시터, 수상스키, 카누 등 전국적인 수상 관광지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하얀 포말과 함께 수면을 가르며 질주하는 수상스키어와 잉어, 쏘가리, 빙어, 붕어 등이 많아 강태공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댐 아래 넓게 설치된 주차장과 다목적 광장은 가족이나 직장동료들의 단체활동이 가능하며, 인근 미락단지의 음식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할 정도이다. 장성 산행의 또 다른 큰 줄기는 백암산과 더불어 장성의 명산인 입안산으로 통한다. 입안산에 위치한 남창계곡은 장성8경 중의 하나. 남창계곡은 산성골, 은선동, 반석동, 하곡동, 자하동, 내인골 등 여섯 갈래로 이루어져 있어 그 깊이가 십여리에 이른다고 알려진다.

계곡 곳곳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새소리가 그침이 없는 울창한 수목과 산천어의 작은 놀림까지 들여다 보이는 맑은 계곡물, 그리고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져 있는 오솔길은 남창계곡이 자랑하는 가장 빼어난 멋이다.이마에 흐른 땀을 훔칠 무렵이면 삼한시대 때 축성한 입안산성을 만나게 된다. 골골마다 스며있는 우국지사의 기개와 저항정신을 되새기는 것도 또 다른 관광의 묘미이다. 남쪽을 제외한 3면이 급경사를 이룬 천혜의 요새지인 입안산성은 고려 때는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하고, 정유재란 때는 윤진 장군이 왜장 소서행장과 맞서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산성의 서쪽 정상에 있는 갓바위와 마당바위, 베틀바위, 상여바위, 족두리바위, 쥐똥바위 등의 기암괴석들의 이름과 형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금곡마을 ‘영화’ 촬영지로 인기

삼림욕을 즐기고 싶다면 전북 고창과 경계를 이루는 축령산 일대가 좋다. 40~50년생 편백과 삼나무 등 늘푸른 상록수림대 80여만평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독립운동가였던 춘원 임종국 선생이 한국전쟁 이후 황폐화된 무임목지에 56년부터 30여년간 조림하고 가꾸어 온 이곳은 현재 전국 최대조림 성공지로 손꼽히고 있다. 편백나무는 스트레스를 확 풀리게 하는 피톤치트라는 특유한 향내음이 있어, 일본·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축령산을 뒤로 한 채 동향으로 자리잡은 마을은 금곡마을이다. 태양광선이 좋고 소음 차단이 완벽한 지역으로 최근 영화촬영의 최적지로 부상중이다.

오지 중의 오지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50~60년대의 마을경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금곡마을은 30여개의 고인돌, 연자방아, 당산나무 당산석, 모정, 가옥 등 전통유적이 산재해 있다. 마을 어귀의 울창한 당산나무로 시작해 고샅길 넘어 싸리나무 담장에 초가집, 다랑이 논, 황소를 이용한 재래식 영농법, 동네 어귀에서 만난 주름진 할머니의 표정까지 모두 박물관에서나 만날법한 순 토종이다. 남면이 고향인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1994년 제작), 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금’(1998년 제작), 김수용 감독의 ‘침향’을 비롯해 MBC TV 드라마 ‘왕초’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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