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속 탄광촌으로 기억되던 태백은 더 이상 옛 모습으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명맥 잃어버린 기억을 털고, ‘관광 태백’으로 거듭나고 있다. ‘고원자연휴양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태백의 하나의 몸짓이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탄광촌에 들어선 휴양림. 찌든 삶을 말끔히 정리하고픈 태백의 염원을 담아서일까, 휴양림은 철암동 금광골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지인에게도 낯선 이곳은 잘 지어놓은 산막과 자그마한 계곡, 울창한 낙엽송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상쾌함, 토산령을 잇는 트레킹 코스로 단장하고 이방인을 맞는다. 해발 700m의 고산지대에 들어선 휴양림으로 떠나보자.




태백시는 한국의 영산인 태백산,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 대덕산 금대봉의 야생화 군락지, 삼수령,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단지 등등 볼거리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다

하지만 태백하면 우선 탄광촌이 떠오른다. 나룻배가 섰던 나루터 수로엔 육로가 놓여져 있고, 가가호호 검은 연기를 내뿜던 석탄 아궁이는 더 이상 존재하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한 때의 유행은 일상에서 멀어가기 마련이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든다.예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역사를 만나면 왠지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이 떠오른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시가 그리는 삶의 풍경 따라, 탄광촌을 언덕삼아 삶을 지탱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간다. 그나마 추억을 달랠 수 있는 건 한 시대를 훑고 지나간 옛 석탄도시의 흔적이다. 그중에서도 철암동은 옛 탄광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고산 밑에 웅크린 듯, 엎드린 듯 지붕 낮은 거무튀튀한 사택들과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기찻길이 이방인의 눈길을 잡는다. 그 옛날 하루 종일 석탄열차가 지나다니던 길. 당시 철암은 석탄이 쏟아내는 소음과 먼지에 아침을 맞고 또 다시 아침을 맞았으리라. 일자리를 찾아왔던 인부들이 다 떠난 지금, 이곳은 침묵만이 가득하다. 다만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척박한 삶이 옛날을 대변해주고 있다.

외딴 산속 보이는 게 내 것

현지인에게 탄광촌의 옛 모습은 관심조차 없는 애환의 기억일 뿐이겠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마치 몇 십 년을 거슬러 온 것처럼 낯선 풍경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경계의 틈에 고원자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다.태백시에서 총사업비 45억6,000만원을 들여 지난 2001년 말 착공해 2005년 6월에 개장한 현대식 휴양림이다. 비록 현지인에게는 낯선 휴양림이지만, 옛날과 현실이 공존하는 이곳은 이방인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매표소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양 갈래로 길이 나뉜다. 직진하면 13개의 객실을 갖춘 산림문화휴양관을 비롯해 10평형 숙박 시설인 숲속의 집 8동이 계곡 옆으로 줄지어 이어진다.

그 외에 야영장, 취사장, 매점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7평짜리 숲속의 집 4동은 반대방향에 조성되어 있다. 여느 휴양림과 별다르지 않은 그런 모습이지만 생긴지 1년 남짓되어 시설이 깨끗하다. 휴양림이 조성된 금광골은 평균 해발고도가 700m에 이른다. 청정 고산지대라서 여름철 무더위도 없다. 외따로 뚝 떨어진 휴양림이라 온 산하는 정적만이 감돈다. 외딴 산속에 들어온 듯 온통 내 것이 아닌 게 없다. 하늘 향해 솟아 오른 낙엽송 산허리에 걸린 달의 모습에 취하다 보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시조 한 곡조가 그리울 뿐이다. 잘 지어놓은 산막 앞에서 야외 바비큐 파티를 벌여도 좋다. 자그마한 계곡에서 흐르는 계곡수도 물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망망대해 토산령 일출 장관

무엇보다 휴양림에는 낙동정맥 한 구간인 토산령(950m)을 잇는 3.5km 정도의 멋진 트레킹 코스가 있다. 토산령은 신리재로 도로가 나기 전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주민들이 태백시 철암으로 넘나들던 주요 산길이었다. 당시 이곳에 유난히 토끼들이 많았다고 해서 토(兎)산령이라고 하고, 옛 소금 운반길이었다고도 한다. 골이 넓지 않은 작은 계곡에는 여울과 소가 연이어진다. 울창한 낙엽송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상쾌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산길에는 각종 야생화가 만발해 있어 관심을 갖는다면 마치 숨은 그림을 찾는 듯하다.

부지런하다면 토산령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능선에 서면 동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가 장관이다. 2시간여 남짓 고개 넘는 길이 가파르지만 가족동반 산행길로 그만이다.휴양림은 인기가 높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구할 수 없다.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 좋다.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면 태백산 도립공원 석탄박물관의 갱도 탐험이나, 대덕산 금대봉의 야생화 군락지,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물줄기, 용연동굴을 찾는 것도 좋다. 그밖에 미인의 전설이 흐르고 있는 미인폭포(삼척시지만 태백과 인접해 있다),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 구불구불 산허리를 휘감고 올라가는 만항재 드라이브길도 놓치기엔 아까운 코스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태백시청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