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아닌 ‘무소불위 권력자들’···다른 장병 스트레스 상당”

국방부 청사. [뉴시스]
국방부 청사.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공군 병사가 간부들에게 빨래와 음용수 배달 등 심부름을 시키고, 1인실을 사용했다는 부대 내 폭로가 나와 논란이 거세다. 실태를 폭로한 인물은 20년가량 공군에서 복무 중인 부사관이다. 그는 “우리 부사관 선후배들이 더는 부당한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직업군인으로서 복무하기 바라는 마음, 그리고 우리 부대가 자정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폭로 배경을 밝혔다. 누리꾼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군 내 인맥 특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요서울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던 ‘군 내 인맥 특혜’ 사례를 예비역들에게 들어봤다.

우리 육사 집안인 거 아시죠?” 부모 전화 한 통으로 공포감

별들의 힘은 대단했다···“‘공군 황제 병사보다 더한 일 벌어질 것

이번 ‘공군 황제 병사 논란’은 해당 부대 부사관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20년간 복무 중인 부사관이라고 밝힌 이 제보자는 “저는 오늘 우리 부대에서 부모의 재력 때문에 특정 병사에게 특혜를 주고 이를 묵인 방조해오는 등의 비위 행위를 폭로하려고 한다”고 운을 뗐다.

제보자는 “해당 병사가 부대에 전입을 왔을 때 병사들과 부사관 선배들 사이에서 해당 병사의 아버지가 모 대기업 회장이라는 얘기가 돌았다”며 “아마 특혜를 준 것도 이를 묵인 방조한 것도 모두 부모의 재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까지도 해당 병사의 부모는 밤낮으로 부사관 선후배들에게 아들의 병영생활 문제에 개입해 달라고 전화를 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 부대에 ‘병사 빨래랑 물 배달을 재정처 아무개 부사관이 하더라’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저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수차례 목격했다는 부사관 후배와 병사들의 말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증언의 요지는 ‘해당 병사가 매주 토요일 아침에 빨래를 부대 밖으로 반출해서 가족 비서에게 세탁을 해 오게 하고 빨래와 음용수를 받아오는 과정에 부사관을 사역 시키더라’는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또 “병사와 관련된 부사관 선후배의 말에 따르면 해당 병사는 생활관원들과의 불화를 이유로 1인실 황제 생활관을 쓰고 있다고 한다”며 “해당 병사는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아서 냉방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데 해당 병사는 팬티 바람으로 생활관에서 지낸다고 한다. 제가 군생활을 20년 동안 하면서 생활관을 혼자 쓰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그러면서 ▲외진을 빌미로 외출해 가족과 불법면회를 한다 ▲해당 병사 부모의 요구로 병사 생활관 샤워실을 리모델링했다 등의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재벌 부모가 밤마다 부대에 전화를 하고, 부모의 재력 때문에 온갖 특혜를 손에 쥐어다 주고, 이를 어떠한 간부도 문제 제기하지 않고 청탁에 응하는 그 모습을 부사관 선후배들에게 미안해서라도 가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 “부디 이번 감찰은 국방부 주관으로 시행해서 올곧은 방향으로 우리 부대가 바뀌기 바란다. 직을 걸고 정말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국방부장관

‘소수의 일탈 행위’라는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원인철 공군 참모총장은 지난 15일 “유리 어항과 같이 모든 것을 숨길 수 없는 세상에서 구태의연한 생각을 가지고 군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각급 지휘관 참모들은 자각해주기 바란다”고 복무상 특혜를 용인한 지휘관들을 질책했다.

원 총장은 이날 전대급 이상 지휘관 대상 화상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지휘관들은 와신상담 해서 자기가 지휘하는 부대에 대해 ‘자기 직을 걸고 하겠다’는 강한 책임감을 갖고 지휘 관리를 해달라”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지휘관 참모는 자신과 함께 생활하는 부하들에 대해 여러 배려가 있을 수 있는데, 그 판단 기준은 법과 규정 등 절차에 입각해야 한다”며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사항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문제가 발생할 때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 소수 인원의 일탈 행위라며 이를 군 전체의 문제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군 기강 해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국방부장관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예비역들은 군 내 인맥 특혜가 과거부터 존재했고, 이런 사례들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소수 일탈 행위로 규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부대장도 못 건드린다

규모 작은 부대일수록 힘↑”

예비역 육군 중위 A씨는 “중대장 시절 한 병사가 우리 중대로 들어왔다. 군 인맥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실체는 모르던 상태였다. 병사들은 당연히 이 사실을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좀 해당 병사를 지켜보니 중대원 등 다른 병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면서 “그 병사가 집에 전화를 해서 그런지 나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병사의 어머니라고 밝힌 사람은 나에게 ‘우리 애가 힘들다고 하던데 잘 챙겨 주고 있나요?’라고 묻더라. 나는 당연히 그 병사를 모든 중대원과 동등하게 대우했고, 어머니에게는 ‘부대 적응 단계라 조금 힘들 수는 있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대뜸 나에게 ‘우리 육사 집안인 거 아시죠?’라고 말하더라. 그 순간 벙쪘다”라고 말했다.

이어 “병사의 어머니는 한참을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의도인지 곧바로 알았다. 그 이후에도 병사의 아버지, 어머니 등에게 전화가 지속적으로 왔다. 거의 시달리다시피 했다”면서 “특혜를 줄 순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내 판단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알고 보니 병사의 친척이 우리 부대(연대) 상위의 상위 격인 군단장이었던 것이다. 무려 계급이 중장이다. 그것도 우리 부대가 속한 군단의 수장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병사의 보직처부장도 부모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대위였던 선배는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토로했다. 우리 부대 수장인 연대장도 군단 내 장성급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하니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면서 “중대원에게도 자세한 내용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을 말했고, 해당 병사가 군 생활을 못하더라도 너무 다그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중대원은 그 병사의 친척이 우리 군단장이었음은 몰랐다. 그걸 알았으면 병사들 내에서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해당 병사 때문에 간부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규모가 작은 부대일수록 이런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장교 징계에

병사 보직 변경까지”

한 예비역 병사는 군 인맥 특혜가 직접적으로 작용한 사례가 있다고 귀띔했다.

예비역 병사 B씨는 “특혜를 받은 병사가 내 맞선임(바로 앞 군번인 선임)이었고, 인맥의 힘이 실제로 작용한 것을 봤기 때문에 자세히 알고 있다”며 “맞선임은 첫 보직이 정훈병이었다. 그러나 거들먹거리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자 연대 정훈과장(처부장)은 맞선임을 질책했다. 맞선임의 휴가 날짜가 다가왔고, 그는 나에게 ‘아버지에게 다 얘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의아했다. 맞선임의 아버지는 군 내에서 직접적인 힘을 쓸 수 없는 한 대학교 총장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맞선임의 부대 복귀 날짜가 다가오자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맞선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맞선임의 처부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실제로 징계를 받았다. 또 휴가 복귀 전부터 맞선임은 정훈병에서 교육병으로 보직이 변경됐다”면서 “부대 복귀를 한 맞선임에게 물어봤다. 맞선임은 나에게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어떤 한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한 식당에서 아버지와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인사를 하니 나보고 군기가 빠졌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누구냐고 여쭤보니 야전군사령관(계급=대장)이라며 예의를 지키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결국 야전군사령관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부터 맞선임의 군기는 더욱 빠졌다. 병사‧간부 할 것 없이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병사 위, 간부 위, 부대장 위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병사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갑질을 했다”면서 “병영문화가 많이 개선된 시기였으나 그는 후임들에게 빨래를 시키고, PX 물품 배달, 심지어 취사장에서만 먹어야 하는 급식을 생활관으로 가져오라고 시켰다. 물론 식판 세척도 후임들의 몫이었다. 선임들에게도 반말을 했다. 엮이지 않으려고 아무도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선후임 병사들을 괴롭혔다. 말이 병사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고 말했다.

훈련소에서도 인맥의 힘이 작용한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예비역 병사 C씨는 “훈련병 시절, 훈련소장(계급=소장)이 내 훈련병 동기 아버지의 친구여서 같이 호출을 받은 적 있다”면서 “훈련병은 급식과 간식 외에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었으나, 그 훈련병 동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과 과자를 사 먹으러 갔다. 그 동기는 훈련 중 아프지 않은데 의무대에 입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른 예비역 병사 D씨는 “훈련소 내 연대에 배치 받고, 조교가 처음 물어보는 게 ‘친척이나 지인이 군인인 사람’이었다. 실제로 손을 든 훈련병들에게 물어 계급과 이름, 부대 등을 적어갔다”면서 “내 옆에 있던 동기의 아버지가 준위였는데,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러나 동기는 중간중간 방송 호출을 받았다. 다녀온 그에게 물어 보니 가족‧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고 왔다고 하더라. 간부의 휴대전화였다고 한다. 전화 통화, 특히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했다는 것은 그 당시 엄청난 특혜였다”고 말했다.

이어 “손을 들었던 다른 동기들도 많이 불려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화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문자를 보냈다는 동기들도 있었다. 평범한 훈련병들은 포상 전화 한 통 때문에 목숨을 걸고 훈련받았다. 너무 억울했다”면서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나중에 그들에게 얘기를 들어 보니, 자대 배치에도 힘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내 인맥 특혜는 정말 많은 곳에서 이뤄진다”고 전했다.

기자에게 사례를 들려준 예비역들은 “군대는 특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특혜가 있더라도 폐쇄적인 특성 때문에 부대 밖으로 알려지기 쉽지 않고, 폭로자가 오히려 상사 또는 상급부대의 질책을 받을 수 있어 쉬쉬한다는 것이다. 또 특혜가 적용되면 특혜를 받은 인물의 권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도 지적했다.

결국 예비역들은 군 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행태를 뿌리 뽑지 않으면 최근 불거진 공군 황제 병사 사태보다도 더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황제 병사의 아버지인 나이스그룹 최영 부회장은 지난 16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아들의 일을 책임지며 나이스 홀딩스 대표이사를 비롯한 그룹의 모든 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공군본부는 지난 15일 수사에 착수했고, 최 부회장 역시 이와 관련한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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