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굴’ 기행 보령 천북


요즘 천북은 그야말로 굴 천지다. 보통, ‘굴’ 하면 경남 통영이 꼽히지만, ‘굴 구이’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에 있는 굴 단지가 원조다. 물론, 제철 굴이야 날로 먹든, 무쳐 먹든, 끓여 먹든 최고의 맛이다. 그 중에서도 껍질 째 석쇠에 구워먹는 굴 구이가 천북의 대명사로 불린 이유는 그 고소함과 쫄깃함에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광천 IC로 나와 천북면소재지를 거쳐 국도 40호선을 타고 10분, 홍성방조제를 건너기 전 좌측에 장은리 굴 단지가 있다. 천북 굴단지에 다다르면 바닷가쪽으로 굴 구이 전문점이 늘어서 있다. 일렬로 죽 늘어선 간판들은 어둠이 내리면 오색 빛을 발한다.

굴에 관한 솔깃한 이야기

굴은 8월까지의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에 살이 올라 겨울이 되면 최고의 맛을 낸다. 11월에서 2월까지 잡히는 것을 최상품으로 치는 이유다.
굴에는 몇 가지 별칭이 있다. 먼저 ‘돌에 핀 꽃’. 이른 바 ‘석화(石花)’다. 울퉁불퉁 제 멋대로 생긴 껍질을 벗겨 내면 뽀얀 우유 빛 속살을 드러낸다. 생것을 그대로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달콤한 바다의 향기가 번진다. 미끌거리면서도 감칠맛을 내는 육질과 육즙.
지방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해 ‘바다의 우유’라고도 불린다. 갯벌가에선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하얗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피부미용식으로 그만이라는 얘기. 그렇기에 해산물을 날 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유독 굴만은 생으로 즐기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9월부터 12월까지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에 ‘er’이 붙여진 어원을 따져보면 ‘oyster(굴)’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제철, 영양 가득한 굴을 맛보던 서양인들의 먹거리 문화가 언어에 반영된 셈이다.
굴과 관련된 우스갯소리 중 가장 솔깃한 이야기는 ‘카사노바의 간식’이다. 남성들에게 자양식으로 통해 “굴을 먹으면 오래 사랑하리라”는 말도 생겨났을 정도.
아무튼, 장은리 굴이 유명한 이유는 천혜의 천수만 일원 때문이다. 서해로 향하는 지천이 많아 해수와 담수가 고루 섞인 뻘이 발달해 굴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또 미네랄이 풍부한 곳에서 자라다 보니 맛 또한 일품. 특히, 양식굴과 달리 뻘에서 자라 일조량이 많은 것도 천북굴을 최고의 별미로 만들어 주는 요소다.
굴 구이를 주문하면 막 잡아 올린 싱싱한 굴 바구니가 등장한다. 3만원이면 온 가족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그득하다. 껍질 째 숯불 위로 올라간 굴들이 ‘탁’, ‘탁’ 소리를 내며 리듬을 타면 익어간다는 신호다. 이윽고 껍질이 벌어지고 뽀얀 육즙과 함께 속살이 공개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속살을 파내 초고추장에 살짝…. 소주 한잔 곁들인다면 굴 맛인지 꿀 맛인지 알 길이 없다. 한 바구니를 다 비우고도 부족함이 밀려온다면 ‘굴 칼국수’가 제격.

드넓은 들판, 잔잔한 호수
천북은 굴 말고도 돌아볼 거리가 많다. 장은리에서 국도 40호선을 타고 보령방조제를 건너면 오천항이 있는데 키조개로 유명한 곳이다. 가게마다 회, 무침, 버터구이, 전골 등의 키조개 요리가 준비돼 있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선착장, 정박해 있는 어선들도 오천항의 볼거리다. 예로부터 오천항은 수심이 깊고 원산도, 안면도 등의 인근 섬들이 방파제 구실을 해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때문에 1940년대까지 범선(帆船)의 요람지였다고 한다. 특히 5일장이 들어서는 날에는 풍선(風船)이 백 여척씩 바람을 타고 항구로 들어오는 정경을 예찬한 ‘오천항 귀범’이 보령 8경중의 하나로 전해져오고 있다.
게다가 오천항은 조선시대 초부터 충청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충청지방 해안방어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성곽, 장교청, 진휼청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다음 코스는 낙조가 아름다운 천수만방조제 코스. 다시 국도 40호선을 타고 홍성방조제와 남당리를 지나 홍성IC로 향하다 보면 멀리 보이는 것이 간월도다. 이 코스로 들어선다면 철새들을 배경으로 한 천수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서산A지구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간월호는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꼽힌다. 드넓은 들판과 잔잔한 호수가 끝없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천수만 일대가 철새도래지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철새들의 주요 이동경로인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내륙지방보다 10월부터 3월까지 월평균 기온이 1.2℃ 정도 높다. 또한 주변의 대규모 간척지(농경지)에서 추수 후에 남겨지는 곡식들이 겨울철새들의 주먹이가 돼 주고 있다.
또한 철새들은 보통 해안가나 큰 강, 호수 또는 산맥 등을 이정표로 삼아 이동하는데, 천수만은 큰 호수와 넓은 농지 등 철새들의 이정표가 될 만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천수만은 북부 시베리아나 만주 등지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철새 이동경로의 중앙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수 만 마리 철새 군무 장관
이래저래 천수만은 철새서식지로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런 조건으로 사계절 내내 각종 철새를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00여종에 가까운 많은 종류의 철새를 한 장소에서 관찰할 수 있다.
요즘의 천수만은 30여만 마리가 넘는 오리, 기러기류가 찾아오고 특히 가창오리는 전 세계 무리의 90% 이상이 이 천수만에서 관찰되며 또한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흑고니, 재두루미 등 많은 멸종위기종이 천수만에서 발견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수 만 마리의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멋진 장관을 볼 수도 있다.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힘들기 때문에 쌍안경이나 스코프 같은 관측 장비, 그리고 어떤 새들인지 알아보기 위한 조류도감이 필요하다. 또한 사전에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탐조코스나 방법 등에 대한 안내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철새들을 탐조할 때는 반드시 유의사항을 기억하는 게 좋다. 첫째, 새들은 한낮보다는 새벽녘이나 해질 무렵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이 시간에 관찰을 해야 하며, 또한 이 시간에 철새의 소리를 제일 잘 들을 수 있다. 둘째, 새들은 시력과 청력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색상(빨강, 노랑, 흰색 등)은 가급적 피하고, 뛰거나 큰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셋째, 사진을 찍기 위한 연출(고함, 자동차 경적, 돌 투척 등)을 삼간다. 넷째, 버스나 승용차 안에서 내리지 않고 관찰하면 새들을 방해하지 않고 더욱 가까이에서 효율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천수만 갈대밭 사이로 장엄하게 낙하하는 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낭만적인 천북 굴 기행의 마무리가 돼 줄 것이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보령시청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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