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과유불급(過猶不及). 도를 넘는 일은 아예 미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사자성어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사(師)와 상(商) 두 명 가운데 누가 더 마음이 너그럽습니까?”라고 질문하니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고 공자가 답하였다. 자공이 “그럼 사가 더 너그럽다는 말씀입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공자가 답하였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상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지친 가운데, 남북대립, 좌우갈등 등 동서남북, 상하좌우, 그리고 국내외 어디를 둘러보나 첨예한 양극단의 대립으로 인한 국민의 피로감과 긴장감이 극에 달해 있는 시대다. 김여정의 거친 입으로부터 시작되어 냉면집 주방장의 저렴한 발언을 거치더니 급기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접경지역 GP에 다시 군이 배치되면서 군사도발에 대한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한 여당의 일방적인 상임위원회 구성에 맞서 야당의 원내대표가 사찰에 들어가 칩거하는 극한 대립 속에, 문제 해결을 위한 물밑 대화나 협상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소위 ‘한명숙 사건’ 감찰을 놓고 지시를 뒤엎고 재지시를 하는 일촉즉발의 기관차로 마주 달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감찰부 대신 중앙지검에 진상파악을 맡겼는데 ‘감찰 중단’이라고 규정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대검 감찰부가 직접 조사하라”며 지시를 엎은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일부 죄수가 제기한 의혹만으로 검찰에 대한 감찰을 한다는 게 정당한 것인가?”라며 부글부글 끓고 있고, 윤석열 총장에 대한 압박용으로 장관의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조선 시대에 왕실 도자기를 만드는 분원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힌 도공인 우삼돌은 ‘설백자기’라는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 임금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일만 하고 유명해진 덕분에 스승으로부터 ‘명옥’이라는 새 이름도 얻은 그에게 주변의 나쁜 유혹이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난생 처음 뱃놀이를 간 명옥은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푹 빠져 일은 멀리하고 기방을 드나들며 놀다 보니 금세 전 재산을 탕진했다.

멀리 배를 타고 나가서 도자기를 만들어 팔아 만회하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배를 탔다가 폭풍우를 만나 모두 죽고 가까스로 명옥만 겨우 살아남자, 그는 반성하며 매일매일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었다. 어느 날 조그만 술잔을 하나 완성했는데, 겉보기엔 평범한 술잔이지만, 잔이 어느 정도 차면 술잔 아래에 있는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신기한 술잔이었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의 ‘계영배(戒盈杯)’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중시해 온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인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도덕론을 다시 새겨봐야 하는 시점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중(中)’과,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용(庸)’의 미덕을 다시 음미해 본다.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지견(智見)을 통하여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론(德論)의 핵심 개념도 중용이다. 계영배에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치우치지 말라는 과유불급의 정신이 담겨 있다. 

‘중용의 덕’이 상실된 시대. 브레이크 없이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대립하는 남북 관계, 여야 관계 및 부처 내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한 갈등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또 그 파국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끝을 모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피로감이 극에 달한 국민들. ‘긴급재난지원금’을 요긴하게 잘 썼다며 허탈함 속에서도 애써 소소한 행복을 찾는 서민들에게 ‘리더’라는 분들이 피로감과 긴장감을 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