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목 편집위원
김현목 편집위원

얼마 전 경남 창녕에서 9세 소녀가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아동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지붕을 타고 옆집 베란다를 통해 빠져나와 그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맨발로 도망치던 아이는 이웃 주민에게 발견돼 구조되었다. 계부에 의해 쇠사슬로 몸이 묶이거나 하루 한 끼만 먹이고, 쇠막대로 찌르고,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지는 등 상상조차 힘든 학대를 자행했다고 한다. 마치 고문 수준의 참혹한 아동학대 범죄다.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될 당시 아이의 전신은 학대의 흔적으로 끔찍할 정도였다고 한다. 충남 천안에서 계모에 의해 학대를 받다가 집에서 여행용 가방 안에서 숨진 아이에 연이은 사건이라 그야말로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어린아이는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가정에서 학대 당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아직도 은밀하게 자행되며 세상 밖으로 실상이 드러나지 않은 아동학대가 수두룩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독지정(舐犢之情)이라는 말이 있다.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사랑이라는 의미로 부모의 자식 사랑을 뜻한다. 그 사랑이 오죽했으면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을까. 부모와 자식은 천륜의 관계다. 그러나 해마다 아동학대범죄가 늘어나는 걸 보면 이 같은 표현이 무색할 따름이다. 아동이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상당하다. 아동학대는 더 이상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과거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여론에 의해 급조된 대책들은 실효성 없이 사라졌다. 지난 2014년 1월 28일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아동복지법의 ‘아동학대 신고의무와 절차’ 조항이 옮겨졌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대하여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동학대 행위는 주로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아동학대 신고의무 준수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 2015년 12월, 인천에서 게임중독에 빠진 친부에게 폭행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11살 소녀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살던 빌라 2층 세탁실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내려와 인근 슈퍼에서 빵을 훔치다 주인에게 적발되었다. 가게 주인은 아동학대로 의심된다며 신고했다. 발견 당시 소녀는 늑골이 부러지고 온몸에 맞은 흔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슈퍼마켓 주인이 아동학대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무단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고 심각한 아동학대 실태의 일부가 드러났다. 

피해 아동에 가해진 학대행위를 직무상 발견할 수 있는 직군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절실하다. 현행 제도는 특정 직군 종사자들을 특별히 신고의무자로 지정해 아동학대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신고의무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2016년 5월에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통해 신고의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대폭 강화했으나 적극적인 신고는 부족하다. 법의 실효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철저한 전수조사를 통해 은밀히 자행되는 가정에서의 끔찍한 폭력과 온갖 학대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시급히 구해 내야 한다. 

학대사건들이 알려질 때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금세 까맣게 잊혀져 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선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민생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도 국회는 사실상 무노동 상태다. 참담하다. 한편에선 아이들이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로 죽어가는데 국회만 딴세상이다. 민생은 실종되고 아귀다툼뿐이다. 아이들만 애처롭다. 조속히 정상화돼 아동학대의 예방과 근절을 위해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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