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모임을 주도해 오던 한영주 여사의 죽음은 주로 동창들로 구성된 계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응원단장 출신인 한 여사는 통이 크고 행동의 폭이 넓어 여장부로 통하던 40대 초반의 주부였다. 집안 살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친구나 동창들의 일 보아주러 다니느라 매일같이 집 밖을 나도는 여자였다. 
그녀는 근 10여 년 동안 소위 계 ‘오야’라는 것을 해 왔는데 최근에는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억대에까지 이르렀다.

한영주 여사는 자기 집 안방에서 반듯이 누운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초동 수사 끝난 뒤 현장에 달려온 추 경감은 상황 설명을 들은 뒤 강 형사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자살로 보기는 어렵단 말이지? 그렇다면 어제 여기서 고스톱 화투를 치면서 함께 놀던 계원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가?”
추 경감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지포 라이터를 철커덕거리며 물었다. 고물 라이터는 언제나처럼 불이 잘 켜지지 않았다. 

“어젯밤 함께 고스톱을 한 사람들은 모두 세 명입니다. 여고 동창인 배인순과 이향녀, 그리고 동창생이며 한동네에 사는 차명순 씨 등입니다. 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이들은 헤어졌다고 합니다.”
“사인은 뭐야?” 추 경감이 다시 퉁명스럽게 물었다.

“심장과 목을 칼에 찔렸습니다. 반항한 흔적이 없는 것 등으로 보아 아는 사람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사망 추정 시간은?”
“반장님도……. 보고서 보셨잖아요?”
강 형사가 너무한다는 투로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추 경감이 눈을 한 번 흘겨주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밤 열두 씨께랍니다. 그러니까 세 명의 동창생과 헤어진 뒤 얼마 안 되어서입니다.”
“용의 선상에는 당연히 그날 밤 화투를 친 세 동창생이 올라 있겠구먼…?”

추 경감이 다시 켜지지 않는 라이터를 철커덕거렸다. “물론입니다. 배인순은 죽은 한 여사에게 돈을 많이 꾸어 쓰고 빚이 잔뜩 져 있었답니다. 또 이향녀는 바람기가 많은 여자인데 지난주 모처에서 외간 남자와 데이트하다 한 여사에게 들켜 야단을 맞은 일이 있답니다. 계속 그렇게 바람만 피우고 다니면 남편에게 이르겠다고 했답니다. 한동네 사는 차명순은 곗돈을 몇 달째 붓지 못하고 있다더군요.“

“그러니까 동기는 모두 성립이 되는군?”
“하지만 차명순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 여자는 그날 밤 일단 집에 갔다가 두통약을 사러 밖에 나왔었답니다. 약국 앞에서 그녀는 일행 중 한 사람이 한 여사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답니다.”
“아니, 같이 나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한 사람이 다시 한 여사 집에 되돌아가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지요.”

“그게 누구야?”
“그게 누군 줄 알면 벌써 해결되었게요? 누구란 것을  차명순이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젠 처음 목격했던 사실도 부인하고 있어요. 친구들끼리 원수지기 싫다 이거죠.”

추 경감은 동창들로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배인순은 생사람 잡는다고 펄펄 뛰었다. 성질이 급한 그녀는 80킬로나 나갈 법한 몸매에 민첩해 보였으며 줄곧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가슴에 있는 금 십자 목걸이가 인상적이었다.

추 경감으로부터 한참 추궁을 당한 차명순이 이향녀와 배명순의 얼굴을 흘금흘금 쳐다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 전화번호가 456국에 2580이니까 나중에 그리로 전화나 해 보세요.”

추 경감은 할 수 없이 모두 돌려보내고 차명순의 집에 전화를 해 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는 엉뚱한 곳이었다. 왜 그녀는 그런 전화번호를 대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추 경감은 무릎을 쳤다.
“이봐 강 형사, 알아냈어. 두 여자 중 누가 범인인가를 알았어. 차명순이 가르쳐 준 전화번호의 의미를 알았어.”

 

퀴즈. 추 경감은 어떻게 범인을 알아냈을까요? 열쇠는 전화번호입니다. 


[답변 - 3단] 우선 당신 앞에 있는 전화기로 456국에 2580을 눌러보세요. 무슨 모양이 됩니까? 그렇죠? 십자 긋는 형상이 되지요? 십자 금목걸이를 한 친구가…….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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