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문화재 사적 제101호 - 삼전도비 (三田渡碑)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당시 청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조의 요구에 따라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이고,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돼 있다.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해 후금을 건국하고 조선을 침략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급기야는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두 나라의 관계는 단절됐다.

결국 인조 14년(1636) 청나라 태종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가 결국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가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을 하면서 부끄러운 강화협정을 맺게 됐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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