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공천 전쟁’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집권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본격 헤게모니 싸움은 이제부터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MB)과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이 비교적 성공리에 끝
나면서 분당설은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한나라당 ‘4·9총선 공직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약칭 공심위)’ 활동이 진행될수록 불협화음이 튀어나올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양 쪽이 모두 만족할 만한 ‘공정한 공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MB쪽과 친박(親朴)진영은 각 지역구 공천을 놓고 불꽃 튀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30%대 안팎의 물갈이가 요구되는 상황이어서 현역 국회의원들 중 공천탈락자도 적잖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영남권 친박 인사들과 수도권 MB계 인사들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우리는 할 만큼 다 했다”

친박진영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이 당선인을 도와준 데 이어 중국특사활동도 잘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반드시 그 대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이번 총선공천에서 5 대 5, 최소한 4 대 6 비율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

박 전 대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실공천을 저지 하겠다”며 MB쪽을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양보하고 합의해주라”고 태도를 바꾸며 갈등상황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이 당선인과의 회동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친박 진영의 김무성 의원은 “두 분의 만남이 불신을 완전히 털고 신뢰를 회복하는 좋은 만남이 됐다”고 설명했다.


‘공천보장 희망’ 80여명

정치권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 당선인과 강재섭 대표가 공정한 공천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박 전 대표 쪽의 방향선회를 이해하기란 쉽잖다는 이유다. 친박 진영이 문제를 제기했던 공천심사위원도 친박(親朴) 대 친이(親李) 대 중립의 비율이 2
대 5 대 4로 박 전 대표에게 불리했다.

한나라당 내 인사 5명은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을 포함해 이방호 사무총장, 임해규·김애실·이종구 의원으로 구성됐다. 강 위원장을 빼고는 모두 이 당선인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외부인사도 MB쪽의 강혜련 교수와 친박 진영이 추천한 강정혜 교수, 중립성향의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 김영래 전 메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양병민 금융노련위원장, 이은재 교수로 이뤄져 친박진영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

때문에 당 안팎에선 박 전 대표가 일정 부분 ‘친박 인사의 공천보장’ 약속을 받은 게 아니냐는 ‘밀약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쪽 모두 약간의 물갈이를 하는 대신 두 계파의 현역의원 수에 해당하는 지분비율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약속을 받았다는 것. 현재 한나라
당 130석 중 MB진영 인사는 70여명, 박 전 대표 쪽은 4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박 전 대표 쪽이 이 당선인 쪽에 전달한 공천보장 희망자 명단이 8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했다.

지난해 대선후보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한 국회의원과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은 각 38명과 42명 정도다.

친박 진영 인사는 “두 사람의 회동 전에 우리가 요구할 사항을 전했고, 이를 이 당선인 쪽이 받아들였다”고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감추지 않았다.


박 ‘1·23 회군’ 왜?

이 같은 상황변화는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았음을 보여준다.

4월 총선에서 최소 과반수 의석확보를 노리는 이 당선인으로선 박 전 대표의 도움이 절실했다. 친박 진영이 탈당, 이회창 전 총재의 자유신당과 손잡을 경우 한나라당은 충청과 영남지역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이 당선인은 회동자리에서 박 전 대표에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협조를 거듭 당부했다.

박 전 대표도 적절한 지분약속을 통해 계파유지에 성공했고, 이 당선인의 ‘동반자’임을 재확인한 점은 성과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순조로운 공천작업을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오히려 일종의 룰이 정해짐으로써 한 자리 공천이라도 더 얻으려는 세력 간 기싸움이 노골화될 전망이다. 암묵적으로 동의를 얻은 만큼 친박 진영의 신경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박 전 대표 쪽 인사는 “공심위만 보면 실질적으론 8 대 2로 불리한 상황”이라고 불만을 나타내며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철저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그룹으로 공천기획단 위원인 서병수 의원도 “중간과정에서 약속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당히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음을 울렸다.

반면 MB진영에선 ‘역차별 논란’이 뜨겁다. 박 전 대표 쪽에 섰다고 공천을 보장 받고, 이 당선인을 위해 뛰었다고 공천이 안 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영남권 출마를 준비 중인 인사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 안에선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만큼 계파를 떠나 ‘당선 가능성’이 제1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천과정의 어려움을 비슷한 비율의 ‘물갈이’로 무마시키자는 주장도 없지 않다.


핵심 측근 ‘읍참마속’

인적쇄신의 필요성이 큰 만큼 지분은 유지한 채 양쪽이 모두 30∼40%대의 물갈이를 하자는 것. 대체로 상대적으로 젊은 이 당선인 쪽이 주장하고 있다.

친박 진영의 김재원 의원은 “인적쇄신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를 빙자해 권력을 잡지 못한 우리만 피해를 보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이 당선인 쪽이 강세인 수도권과 친박 진영의 영남권 인사가 가장 먼저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여론에 따르면 두 지역은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는 곳이다. 깃발만 꽂으면 금배지를 찰 수 있을 정도로 한나라당이 강세
란 얘기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상호 인적쇄신이 이뤄질 경우에야 논란을 최소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쇄신기준으론 최근 들어 당헌·당규가 거론되고 있다.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사법처리를 받은 전력이 있거나 형이 확정된 사람, 당에서 징계를 받았던 인사들을 공천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공천기준은 공심위와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될 것이지만 부정이나 부패전력이 없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해당 당규는 ‘뇌물과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직후보자 추천신청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당 안팎에선 친박 진영의 좌장인 김무성 최고위원과 MB계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 위원은 벌금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고 정 의원은 ‘살생부 발언’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처분을 받았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대체로 영남권의 친박 의원들과 수도권 MB그룹 의원들 중 일부가 물갈이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고 내부분위기를 전하며 “1∼2명의 핵심측근들이 상징성 차원에서 포함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한 만큼 국회의원 금배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힘 있는 ‘제3의 자리’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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