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특수감청정보 최초 수집 韓 제5679부대장…하지만 軍 수뇌부 ‘묵살’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올해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주기를 맞이했지만, 그 아픔은 여전하다. 18년 전인 지난 2002년 6월29일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故 윤영하(소령)·한상국(상사)·조천형(중사)·황도현(중사)·서후원(중사)·박동혁(병장)이 전사(戰死)했고 나라는 비탄에 빠졌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젊은 장병들을 살릴 ‘정보’를 묵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북한군의 도발 징후가 담긴 ‘대북 특수감청 정보(Special Intelligence·SI)’를 외면했던 것. 심지어 SI를 최초 보고한 제5679정보부대 사령관 한철용(74·육사26기) 예비역 육군소장은 미군으로부터의 훈장이 박탈되고 누명을 뒤집어썼는데, 이를 외면한 수뇌부는 대부분 진급했다. 일요서울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지난 25일, 한 소장을 만나 그 내막을 들어봤다.

-韓 “제2연평해전 젊은 영웅 모신 장례식 3일장 ‘속행’…정작 책임자는 '불참'”
 

제2연평해전 15주년 기념식이 열린 2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 제2연평해전 전적비에서 박동혁 병장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부조를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2017.06.29. [뉴시스]
제2연평해전 15주년 기념식이 열린 2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 제2연평해전 전적비에서 박동혁 병장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부조를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2017.06.29. [뉴시스]

 

-2002년 6월13일과 6월27일 각각 14자와 15자의 SI를 획득했는데, 어떤 내용이었나.
▲ 제2연평해전 발발(勃發) 2주 전 SI는 “(北)해안포 발포준비 중이니 방심 말 것”이었다. 이는 당시 北 8전대 사령부에서 北 경비정에게 지시한 내용이다. 불과 이틀 전 SI는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음”으로, 北 경비정이 8전대 사령부에 보고한 것이다. 이는 北 경비정이 명령을 받고 출전했을 뿐만 아니라 포격 명령이 하달되지 않으니 北 8전대사에 무전을 한 것이다. 모두 북한군 도발의 결정적 예증이다. 제5679정보부대는 이같이 ‘매우 민감하고 엄중한 특수정보’를 포착해 국방부 정보본부에 모두 보고했다. 직접적인 도발 징후로 판단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제5679정보부대가 수집한 이 SI를 묵살, 2함대사령부에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정보 판단 또한 ‘단순침범’으로 수정 하달하는 등 완전히 뭉개 버렸다.
 

-‘일일주요정보보고서’라는 ‘블랙북’에 담긴 SI가 기무사·국정원·연합사로 보고됐는데도 왜 작전부대로 전파되지 못했는가.
▲ SI란 ‘적(敵)으로부터 감청한 통신내용’을 뜻한다. 즉, 감청한 적의 교신 내용이다. 한마디로 적의 통신감청정보인데, 적 나름대로 보안성을 띠고 있을 수 있어 특별한 취급이 요구되기 때문에 ‘특수정보(Special Intelligence)’다. 당시 777사령부(제5679정보부대)는 이를 수집해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그런데, 당시 군 수뇌부는 ‘다른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1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당시 참수리 357정에 탑승했던 영웅들의 흉상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2015.06.29. [뉴시스]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1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당시 참수리 357정에 탑승했던 영웅들의 흉상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2015.06.29. [뉴시스]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SI를 지웠다고 보는가. 혹시 햇볕정책의 기조가 담겼다고 보기 때문인가.
▲ 2000년에 있었던 ‘6·15 남북공동선언’이후 군 내부에서 대북 경계심이 본격적으로 이완된 모양새였다. 당시 주한미군 측은 북한의 군사동향에 민감하게 대응했지만, 국방부는 햇볕정책에 호응하는 양상이었다. 국군이 수집한 예민한 대북 군사첩보를 미군에게는 보안사항이 되면서 미군과 공유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제2연평해전으로부터 불과 보름 전인 6월13일, 우리 부대로부터 전달받은 SI가 미군 측에 제공되지 않았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北 순안공항의 착륙 헬기2대를 특이사항으로 봤다. 北 해군작전사령부까지 개입됐다 보는가.
▲ 그렇다. 제1연평해전은 지난 1999년 6월15일 일어났는데, 그때 우리 해군은 북한군 100여 명가량 제압하는 등의 전과를 기록, 승전고를 올렸다. 그때 북한은 이들을 후송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영상정보(Imagery Intelligence)를 통해 헬기를 추적했는데, 차량 등이 확인됐다. 이는 北 해군사령부의 고급 군관의 지휘활동 정황으로, 그들의 동선으로 판단됐다. 당시 이들은 북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北 김정일에게 ‘승전보’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봤다. 그 일대에는 북한군의 전쟁지휘소 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군사정보 분석관 등에 따르면 北 해군사령부는 평양에 있고, 北 8전대 사령부는 ‘사곶(항)’에 있다. 평양과 사곶 사이 황해도에는 산이 있어 전파 차단이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천 중계소’가 있는데, 北 등산곶 684호와 우리 해군의 참수리 호의 격전 중 北 경비정 388호가 전투 상황을 北 신천 중계소로 실시간 중계했다. ‘(불땅)포성이 들리느냐’, ‘출항 때 지시대로 함포사격 했느냐’, ‘사격이 끝났으면 이탈해서 올라오라’, ‘684한테 같이 북상하라’는 무전이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겠나. 바로 北 해군사령부가 배후에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제5679정보부대 사령관이었던 한철용 예비역 육군 소장. [한철용 예비역 육군 소장]
제5679정보부대 사령관이었던 한철용 예비역 육군 소장. [한철용 예비역 육군 소장]

 

-당시 기무사는 정보지원이 부족했다는 명분으로 ‘표적조사’를 실시했다. 왜 그랬다고 보는가.
▲ 규정에도 없는 일이지만 장관 특별 명령인데 어느 누가 면전에다 반박할 수 있겠나. 그해 7월4일 한미정보장군단 회의가 있었는데, 국방부는 자꾸 ‘北 경비정 단독행위’라며 ‘의도적이지 않다, 우발적이다’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렇다면, 앞서 우리 제5679정보부대가 보름 전 해전 2일 전 획득한 SI는 무엇인가.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음”이 우연인가. 당시 내가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니 손을 봐야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고, 명분이 마땅치 않으니 이를 빌미로 삼았던 것 같다. ‘민감한 특수정보’만을 취급하는 제5679정보부대는 그 전문성으로 46년 동안 기무사와 별개로 보안점검을 받았는데, 갑자기 특별조사를 하는 게 규정에 있는 일인가. 아무튼 장관이 굳게 마음먹고 ‘항명 하느냐’는 형국이었는데 어쩌겠나. 조사를 받았다. ‘보안 위규’ 등을 엮어 법원까지 갔지만, 징계는 부당하다고 소명됐다.

-SI를 보고한 본인은 강제 전역 처리됐고 책임을 회피한 자들은 진급했다. 억울하지 않았나.
▲ 2함대사령관이었던 故 정병칠 해군 소장은 전투 실패를 빌미로 해임됐는데 그게 단초가 돼 결국 2009년 타계했다. 당시 해당 SI가 담기지 않은 ‘일일주요정보보고서(블랙북)’를 고려해 작전을 지휘했다. 그때 우리 참수리 호는 北 등산곶 684호를 완전히 격침시킬 수 있었는데, 상급부대에서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꽃다운 젊은 장병 6명 전사(戰死) 및 18명이 전상(戰傷)을 입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정 제독이 뒤집어썼다. 함대 작전권은 해군작전사령관에게 있어 그는 군법회의에 회부됐어야 하는데, 정작 그는 진급해서 해군참모총장이 됐다. 제2연평해전은 ‘말단 전투 실패’로 비하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은 목숨을 잃거나 불명예스럽게 강제전역 당하고, SI를 뭉갰던 합참 정보장군들은 별 하나씩 더 달고 해외 무관으로 영전했다. 결국 2함대사령관 정 제독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7일 오전 백령도 연하리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제막식에서 한 유족이 46용사의 동판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2011.03.27. [뉴시스]
27일 오전 백령도 연하리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제막식에서 한 유족이 46용사의 동판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 참수리 호를 향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로 인해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했고 18명이 전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8년 후 북한은 우리 해군의 천안함을 향해 또다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2011.03.27. [뉴시스]

-최근 북한이 도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해5도·NLL이 위험하다는 우려가 있는데 어찌 보나.
▲ ‘서해5도·NLL은 피로 지킨 바다’라고 한다. 그런데 ‘서해5도·NLL은 피로 지킬 바다’가 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북한군은 백령도를 기습 점령할 능력이 된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한미연합군의 작전 지역이지만, 지금 주한미군이 서해5도·NLL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가 됐다. 백령도가 기습 점령당하면 탈환 작전을 전개해야 하는데, 망설이는 듯하다.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서해5도·NLL에서는 ‘제2연평해전’이라는 대참사가 벌어졌는데, 다음 날 금강산 관광선이 출항했다. 심지어 해전에서 끝내 전사(戰死)한 젊은 영웅들인 故 윤영하(소령)·한상국(상사)·조천형(중사)·황도현(중사)·서후원(중사)·박동혁(병장)의 장례식은 무엇이 불편했는지 3일장으로 속히 치러졌고,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조차 자리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제아무리 햇볕정책이라는 명목으로 북한 눈치를 본 것 아니냐고 하지만, 어떻게 나라를 지킨 국민보다 더 중한가. 그들의 원혼을 달랠 길은 이 답을 찾는 데에 있을 것이다. 왜 우리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6.25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6.25전쟁 전사·순직자 묘역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2020.06.24. [뉴시스]
6.25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6.25전쟁 전사·순직자 묘역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2020.06.2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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