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암호명은 샤오린이었다. 그 암호명을 그는 매우 좋아했다. 물론 그 자신이 18기의 대가인 탓에 샤오린이라는 암호명이 떨어진 것이니 그 암호명은 그가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부에서도 그를 매우 신뢰했다. 그가 지금까지 처리한 일은 모두 5건. 그 5건이 모두 완벽하게 처리되었다. 그는 자신의 18기만을 믿는 무모한 요원이 아니었다. 그는 폭약을 다루는 데도 전문가였으며 전기 전자 분야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변장술에도 능했다. 동남아를 무대로 삼고 있는 만큼 외국어들에도 능통했다. 그는 본국인처럼 일본어와 한국어를 쓸 줄 알았고 영어와 포르투갈어도 능수능란했다.

이제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홍콩의 흑룡회에 속해 있는 일급 살인 청부업자다. 나이는 35세.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에게 새로운 임무가 떨어졌다. 목적지는 한국. 임무는 마약 밀수를 시도하다가 한국 경찰에 억류된 ‘리’라는 자를 살해해 입을 막는 것이었다. 리는 전향해서 한국에 닿아 있는 모든 루트를 공개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홍콩의 조직도 위협을 받게 되고 두목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아마도 그 녀석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 안전할 줄 알고 전향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샤오린을 길러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샤오린은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리를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는 그런 의리를 모르는 놈이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칼이나 총 따위의 구태의연한 암살 방법은 포기했다. 폭약으로 흔히 ‘c4’라 불리는 ‘컴포지션4’를 선택했다.
그 폭약은 마치 고무찰흙처럼 변형이 쉬워 어떤 모양으로든지 변형을 시킬 수 있다.

그는 홍콩을 떠나기 전에 철저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방법에 완전한 확신을 한 뒤 한국을 향해 떠났다. 세관에서 검문이 철저했지만, 그는 여유 있게 세관을 통과했다. 그는 70대의 노인으로 변장해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미 모든 정보가 그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변절자라는 경찰의 보호 아래 열흘 전부터 허름한 삼류 연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철저한 감시보다는 오히려 허술해 보이는 쪽이 안전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삼류 추리소설 같은 생각이야.”

샤오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국의 여관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한두 번 한국에 들어왔던 것이 아니었으니 만일 리가 안가에 들어앉아 철통 같은 경비를 받고 있었다면 그는 람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활에 폭탄을 달아 날려 보낼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삼류 여관에 묵고 있다면 처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안전도 얼마든지 도모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샤오린은 일단 사전 답사에 나섰다. 여관은 장안동에 있었고 샤오린이 예전에 묵었던 적도 있는 곳이었다. 샤오린이 제일 먼저 파악한 것은 전봇대였다. 그는 어느 전봇대에서 전력이 그 여관으로 들어가는지를 알아냈다. 다음에 그는 한전에 전화를 걸어 정전 일자를 알아보았다. 안타깝게도 이틀 전에 그 지역이 정전되었다는 답을 들었다. 그 말은 앞으로 한동안은 다시 이 지역에 정전이 없으리란 말과 같았다. 그는 인위적인 사고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성을 들여 폭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양초의 형태를 만들어졌다. 그것은 완전한 새 양초 모양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양초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5분간은 양초의 심지가 마치 도화선과 같은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그 밑으로 두려운 위력을 가진 폭약이 숨겨졌다. 한국 경찰이 그 방에 누가 있었는지 몰랐다면 신원도 확인할 수 없게 될 정도의 양이 양초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양초를 리가 있는 방안에 갖다 두기만 하면 된다. 샤오린은 그 여관의 방 어느 곳에 양초를 두는지도 알고 있었다.

샤오린을 리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 놓았기 때문에 손쉽게 그 방으로 침투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여관의 전화선을 끌어내 도청을 시작했다. 그가 집중적으로 도청을 한 시간은 저녁식사 시간대였다. 도청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기회가 왔다. 리가 중국 요리를 시킨 것이다. 샤오린은 종업원을 때려눕히고 배달원으로 변장했다.

그는 배달을 오다가 엎어졌다고 말해서 손을 씻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 뒤 은근슬쩍 양초를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정도의 눈속임은 프로페셔녈 킬러인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정전만 일으키면 된다.
그는 끈기 있게 어우러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사방이 깜깜해지자 그는 전선주를 올라가 합선을 일으켰다. 금방 여관이 어둠에 휩싸였다. 그는 뿌듯한 기분에 휩싸여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 출국하려다가 공항에서 추 경감이라는 사람에게 체포되었다. 그가 경호팀의 팀장이었다고 했다. 추 경감의 부하인 강 형사라는 자가 샤오린의 주머니에서 바꿔 치끼리 된 양초를 끄집어냈다.
“여기에 실수가 있었던 거야, 알아”

샤오린도 그때야 자신의 실수를 알았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퀴즈. 샤오린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요?

 

[답변-3단] 샤오린이 만든 양초는 완전한 새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열흘 전에 정전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양초는 사용된 것이었다. 추 경감은 양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 증인을 구할 수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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