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대표
박동규 대표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24일 옛 주일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새롭고 낯선 보수단체에 둘러싸였다. 지난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집회 이후 28년 동안 일제의 강제위안부 동원과 피해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며 정대협과 강제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비롯한 시민들이 지켜 온 자리이다.

TV 화면에 비친 ‘소녀상’ 얼굴로는 ‘빗물이 눈물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늘 수요집회에서 그 자리를 지켜 왔던, 당신들의 청춘과 삶을 송두리째 강탈당했던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강제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소녀상 그리고 수요집회는 일제강점기 36년의 되돌릴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한과 절규, 항일과 극일의 상징적 장소였고 일본이 가장 회피하고 했던 현장이었다. 국민들은 하나둘 고령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언젠가 꺼져 갈 듯한 일제만행에 대한 기억을 ‘소녀상’과 ‘수요집회’를 지켜보면서 마음 든든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여러 의혹 폭로는 잇달아 정대협과 관련 단체, 시설, 사람들에 대한 각종 의혹으로 확산되었고, 수사가 시작된 후 결국 위안부 쉼터 소장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접해야 했다. 정치적 공방과 보혁 간의 거친 말싸움으로 번지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수요집회의 ‘절실한 요구’와 ‘의미’ 조차 훼손당해 감에도 여전히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수십 년을 함께해 왔지만, 지금 국민들의 신뢰와 믿음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야당과 언론에서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시시비비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녀상’이 집회와 시위의 ‘쟁탈전’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 더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조속한 수사로 시비의 종착점이 빨리 오길 기대할 뿐이다.

정대협과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시민, 학생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켰던 그 소녀상을 극우단체들에 의해 선점당하고 ‘소녀상 철거’와 ‘2015년 위안부 한일합의 정당성 등 일본의 주장을 복창하고 있어도 ’분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질 않는다. 

28년 동안 지켜왔던 소녀상 주변은 보수단체라 하기에도 민망한 극우 단체가 집회를 한 달이나 선점해 놓았다고 한다. 최근 여기엔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 공동행동‘이라는 청년. 대학생들이 쇠사슬 묶음 시위까지 하면서도 소녀상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누군가가 지켜야 할 자리 누군가가 외쳐야 할 말들을 소녀상 앞에서 ’청년‘들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보수 극우 단체든 누구든 정대협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일제 만행의 상징인 소녀상과 28년을 이어온 수요집회 장소에서 보수 극우 단체가 자리를 선점하고 외치는 ’소녀상 철거‘는 도대체 누굴 향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행동인가.

우리 스스로를 자해하는 행위와 다름없는 일이다. 국민들이 일제 만행에 대한 ‘항거’라는 '정의로운 기억'을 되살리는 엄중함 앞에서 더 이상 소녀상 앞 ’맞불 수요집회‘는 중단하고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한다. 소녀상 앞에서 특정 단체와 특정인이 밉다고 외치는 ’소녀상 철거‘는 일본 아베 정권과 우익 세력들에게 ’미소‘만 선물해 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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