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국회 개원 협상 결렬 후 열흘 가까이 이곳저곳 절을 찾아 칩거했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합장기도는 무엇이었을까.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민주당의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에 반발해 통합당이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사찰을 돌며 장외시위를 했다. 그리고 20일 속리산 법주사로 찾아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18개 상임위원장 모두 가져가라'는 역공 전략에 동의하고 복귀키로 했다.

'다 가져가라'는 역공은 적지 않게 민주당을 당황스럽게 했다. 또 민주당의 독주, 독행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었고 국민들에게 민주당의 교만과 오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의 '총체적 대북정책 실패'로 볼 수 있는 북한 김여정 대남 막가파식 공세와 미국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파문 등이 주호영 대표의 산사 칩거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러나 주호영 대표의 이번 장외투쟁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원 구성 협상 거부와 산사 칩거가 처음부터 주호영 대표의 원내 전략은 아니었을 것이다. 막무가내로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민주당과는 협상이 더 이상 불가하다는 판단하에 박차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대표가 맞불카드로 제시한 것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다 가져가라'였다. 

분명 원인 제공은 민주당이지만 그 대응 방법은 어른스럽지 못했다. 밥그릇 놓고 싸우다 안 되니 '퉤 퉤 퉤 더럽다 더러워. 너 혼자 다 처먹어라' 식이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이번 원 구성 전략은 법안의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만은 반드시 챙기겠다는 것 외에 다른 전략이 없었다.

21대 총선에서 폭망하고 멸족의 위기에 처한 통합당 원내전략을 이끄는 원내대표의 전략치곤 치졸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난 직후부터 민주당의 의회 독주 전략은 분명했다. 추경예산부터 시작해서 현충원 파묘,  한명숙 전 총리 재수사와 윤미향 옹호, 공수처 출범 재촉과 윤석열 검찰총장 해임공작 등 민주당이 범여 180석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정국을 독주할 것이라는 징후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통합당 원내대표는 그에 맞는, 비상한  전략을 수립하고 단계적 전술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렇지 못했다. 관행과 자리에 연연해 멸족 위기 정당다운 비상한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임진왜란때 조총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진창 갈대밭에서 기마대로 이기겠다고 우겼다가 떼죽음을 당한 신립 장군이나 마찬가지다.

또 역공 전략인 '다 가져가라'는 여야 원 구성 협상 전부터 통합당과 그 주변에서 나왔던 아이디어다. 범여 진영이 180석에 달해 어느 한 상임위에서도 여당의 강행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다 내주고 대신 그 책임도 여당이 모두 감당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통합당이 그동안의 관행적 기득권(여야 나눠먹기)을 포기함으로써 혁신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이미지를 얻는 효과도 상당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주호영 대표가 선택한 것은 관행과 실리였다. 법사위원장을 비롯해 7개 상임위원장을 내놓으라는 협상안이었다. 주호영 대표가 '혁신'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협상안을 제시한 이유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22일 “민주당이 법사위를 가져가는 대신 ‘알짜 상임위’를 내주겠다는 것은 우리 당 중진 의원들을 겨냥한 말로 통합당을 교란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발언은 민주당의 속내를 밝힌 것이지만 중진의원들의 압력도 작용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들린다. 실제 원내대표 후보 경선 직전 7~8명의 전. 현직 중진의원들이 모여 원내대표와 국회 부의장, 상임위원장 직을 나눠 맡기로 합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때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김종인 비대위원장 선임도 이들이 반전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따라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 구성 전략을 짜는 데도 이들의 조언이 있었고 당시 중진 모임에서 합의한 위원장 배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21대 통합당 의원들의 "익숙했던 과거와의 결별 선언을 한다"던 약속은 시작부터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통합당은 지금 혁신의 시간,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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