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원구성 협상은 원내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협상은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합의는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국회의장으로 박병석 의원이 국회부의장으로 김상희 의원이 선출되었지만 미래통합당 국회부의장 몫은 공석이다. 야당 몫 국회부의장에 내정된 정진석 의원은 아직은 평의원인 상태이다.

지난 6월15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힘으로 법사위원장 등 6개의 상임위원장을 가져갔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풍채(風采)만큼이나 강하게 밀어붙이기 중이다. 예상을 초월한 밀어붙이기가 감행되자 미래통합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국의 사찰로 잠행했다.
법주사에서는 자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만났고, 화암사에서는 김태년 원내대표와 파안대소를 하며 만났다. 거기까지는 뉴스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가 원하던 정치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빈손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화암사는 필자 개인적으로도 유서가 깊은 곳이다. 기복신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딸 바보’인 필자는 딸이 대입을 앞두고 있을 때 화암사를 찾아 108배를 세 번이나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소위 기도발이 잘 받는 사찰이라고 귀띔을 해 주었는데, 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였기에 화암사의 효험을 톡톡히 봤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주호영 원내대표와 화암사 경내를 거닐며 파안대소를 하고, 기꺼이 그 배경이 되어 주신 화암사 주지스님을 보면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국가 대사는 개인 소사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매우 안타까웠다.

화암사 사진도 좋았지만, 두 원내대표의 사진에는 동해안 오징어 채낚기배의 밝은 LED조명을 원거리 배경으로 고즈넉한 카페에서 대화를 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루어진 합의가 없다니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자신들이 뭐 모델이나 되나! 가식에 가득 찬 모습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면 이미 그들은 정치인으로서 실격이다.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더불어민주당은 나머지 12개 상임위원장도 일단 독식하여 상임위원회를 가동시킬 것 같다. 대통령도 추경이 급하다고 하고, 원외 당대표도 닦달을 하니 밀어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는 것이 자신들에게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몰아준 국민의 뜻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진석 국회부의장도 물 건너간 걸까?

과거 정치적 낭만의 시대였던 ‘3김 시대’에는 무시무시한 정치공작도 있었고, 생사를 넘나드는 잔혹함도 있었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운치(韻致)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이길 줄 알면서도 양보하고, 상대의 수가 뻔히 보이지만 상대를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그러한 운치가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김영삼의 대선후보 쟁취를 위한 지방 잠행, 김대중의 지방선거 쟁취를 위한 단식 등은 정치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요인의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잠행정치나 단식정치는 영화 친구의 명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와 다름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상대를 비난하는 언동은 당연한 것이다. 장을 지졌는지 안 지졌는지 확인하려 하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파안대소 뒤에 비수를 꽂는 행위조차 엽기적이지 않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뻘쭘한 서울 복귀는 당내 사기를 저하시켰다. 자신의 카운터 파트너는 오늘도 자신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의 잠행정치는 대실패다. 그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잠행정치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4.15 총선의 민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반정당이 상임위 독식해서 책임정치 하라”는 홍준표 의원의 지적이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다는 점을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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