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20223월 치러지는 20대 대통령 선거가 1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2년 가까이 시간이 남았지만 이미 정치권의 시선은 차기 대선을 향해 있다. 대선주자들의 대선 레이스 기반 다지기가 한창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어느 지역 출신이, 어떤 시대적 가치를 들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게 될까.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를 뽑는 일이기에 대선주자들이 제시하는 비전과 어젠다가 최우선적인 선택 기준이 돼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출신 지역도 무시 못할 필승 조건 중 하나로 꼽혀왔다. 지역구도가 한국정치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불변의 공식처럼 떠돌던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도 지역구도의 한계 속에서 생겨난 말이다. 차기 대선에서도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이 또다시 작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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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내란음모 계엄령 문건 특검하라 촉구를 위한 제12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얼굴이 그려진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9.11.02, 뉴시스

-‘87년 체제이후 선출된 7명 대통령 가운데, 호남 출신은 DJ가 유일
- 호남후보 정동영은 참패, 영남후보 노무현문재인 승리호남 출신 이낙연은?

대선이 18개월 남은 상황에서 대선주자 경쟁 구도는 거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 독주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의원은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도 격차가 크다. 3위 이후 후보들은 모두 한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9~116월 정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낙연 의원(28%)은 두 달 연속 최고치를 유지하면서 1위를 기록했다. 이재명 지사(12%)2위 자리를 유지했다. 뒤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상 2%),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상 1%) 순으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낙연 의원이 압도적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지금도 정치 관련 기사에서 종종 등장하는 분석이 있다. 이 의원이 호남 대선후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지금의 여권에서는 야당 시절부터 오랫동안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이 진리인양 회자돼왔다. 영남 출신 대선후보가 대선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호남 출신 대선후보는 반드시 패배한다는 얘기다.

# 하나 호남후보 필패론’, 영남 수적우위역대대선 근거

이 같은 주장은 영남이 호남에 비해 수적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영남 유권자는 호남보다 2.5배나 많다. 이번 21대 총선 기준으로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지역 영남 유권자는 약 1,300만 명이다. 반면 광주전남전북 지역의 호남 유권자는 512만 명이다.

또 역대 대선 결과도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을 뒷받침해줬다. ‘87년 체제이후 선출된 7명의 대통령 가운데 호남 출신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유일하고 그 외 노태우(대구)김영삼(경남 거제)노무현(경남 김해)이명박(일본경북 포항)박근혜(대구) 전 대통령과 문재인(경남 거제) 대통령은 모두 영남 출신이다.

지금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워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영남 출신을 내세워 보수정당의 텃밭인 영남지역 갈라치기로 승리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특히 TK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약한 PK를 집중 공략했다.

# DJ, DJP연합과 이인제 이회창 표 잠식으로 승리

97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충청지역 대표주자인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와 DJP연합으로 손을 잡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인제 국민신당(19.2%)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표를 잠식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종 개표 결과 김 전 대통령은 40.3%를 획득해 이회창 후보(38.7%)1.6% 득표율 차이로 꺾고 승리했다.

호남은 김 전 대통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광주에서 97.28%, 전남 94.61%, 전북 92.28%를 획득했다. 그러나 영남은 김 전 대통령에게 냉랭했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에서 11.04%, 부산에서 15.28%, 대구에서 12.53%, 경북에서 13.66%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충청권에서는 DJP 연합의 효과가 나타났다. 대전은 김대중 45.02%, 이회창 29.17%, 충북은 김대중 37.43%, 이회창 30.79%, 충남은 김대중 48.25%, 이회창 23.51%를 기록했다.

# 셋 노무현, 호남 노풍과 영남 갈라치기로 대선 승리

영남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광주에서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일으켰고, ‘노풍바람을 타고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에서 48.9%를 획득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46.6%)를 꺾고 승리의 기쁨을 안았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 95.17%, 전남 93.38%, 전북 91.58%에서 9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18.67%)와 경북(21.65%)에서는 20%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부산(29.85%), 울산(35.27%), 경남(27.08%) 지역에서는 30%를 넘나드는 지지를 받았다.

# 넷 문재인 호남표 잠식’ PK 고른 득표율로 승리

영남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호남의 전폭적 지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호남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노무현 정부 시절 호남을 홀대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문 대통령을 공격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호남 홀대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호남 표심을 공략하면서 호남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결과 41.1%를 획득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4.0%)와 안철수 후보(21.4%)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호남에서는 광주 61.14%, 전남 59.87%, 전북 64.8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문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호남에서 9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안철수 후보가 호남에서 20~30%대 득표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PK에서 20~30%대 지지를 받은 홍준표 후보에게 뒤지지 않는 고른 지지(부산38.71%, 울산 38.14%, 경남 36.73%)를 받아 승리의 기반을 다졌다. 문 대통령은 대구에서는 21.76%, 경북에서는 21.7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 다섯 호남 정동영 참패’, PK10%대 득표율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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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남 출신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26.1%를 얻어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48.7%)에게 두 배 가까운 득표율 차이로 참패했다. 정동영 후보는 당시 광주에서 79.75%, 전남 78.65%, 전북에서 81.60%를 획득했다.

그러나 PK지역에서는 부산 13.45%, 울산 13.64%, 경남 12.35%로 득표율이 20%도 넘지 못했다. 심지어 대구에서는 6.00%, 경북에서는 6.79%로 득표율이 한자릿수에 그쳤다.

# 여섯 포스트 코로나 대선? “민생후보 각광 받을 것

그렇다면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어떨까.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이 작동할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은 더 이상 주효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이번 415총선 결과를 보더라도, 또 이낙연 의원이 호남 후보임에도 여론조사 1위를 지키며 독주하고 있는 상황을 보더라도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은 이제 구시대적 사고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맞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대선주자의 비전과 정책 어젠다가 승부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예상이 적중할지는 대선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26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PK 출신이지만 호남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서 대통령에 당선된 분들이다. 그러나 호남 대선후보 필패론은 지금은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그게 먹힌다면 지금 이낙연 의원 지지율이 30% 안팎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정치판이 일단 지역 투표 성향이 완화된 측면이 있고, 이제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새로운 정치 이슈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포스트 코로나시대에 이념이 먹힐 것이냐. 이제는 영남주자, 호남주자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포스트 코로나시대에서 진보보수라는 이념보다 국민들의 실생활에 다가오는 민생 지향적인 후보가 영남이든 호남이든 더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영남 후보는 승리하고 호남 후보는 안되고 이런 것은 구시대적 생각 아닌가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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