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은 식물법...정부 의지는 있는가?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인권법은 17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의 김문수 의원이 최초 발의한 후 약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 2016년 통과됐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2004년과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시행했다. 특히 미국은 2022년까지 북한인권법을 연장하며 대북 정보유입 기기의 종류를 다양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내 북한인권단체의 대북(對北) 전단지 살포 문제로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우리 정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통일부가 지난 2016년 3월 북한인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이를 시행할 기구로 출범을 준비한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폐쇄했다. 통일부는 2016년 10월 서울 마포구에 재단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주 직원을 파견했지만 국회의 이사 추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출범조차 하지 못해 빈 사무실에 매월 6300여만원의 임차료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15일 상주직원들이 철수한 서울 마포구의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2018.06.15.[뉴시스]
통일부가 지난 2016년 3월 북한인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이를 시행할 기구로 출범을 준비한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폐쇄했다. 통일부는 2016년 10월 서울 마포구에 재단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주 직원을 파견했지만 국회의 이사 추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출범조차 하지 못해 빈 사무실에 매월 6300여만원의 임차료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15일 상주직원들이 철수한 서울 마포구의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2018.06.15.[뉴시스]

 

-현행법 ‘무시’에도 文, 딴청

정권 교체 이후 북한인권법이 사문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각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6월18일 북한인권법에 명시된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방문 “2017년 출범 이후 3년이 지나도록 기관 홍보용 책자 발간 외에는 북한인권침해 관련 결과보고서를 발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한변, 상임대표 김태훈)’을 비롯한 12개 북한 인권단체가 지난 3월3일에 국회 정론관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4주년을 맞아 북한인권법 사문화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인권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사)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발간한 ‘2019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생명권과 피의자‧구금자 권리 침해 사례가 이전보다 증가했다. 백서에 따르면 생명권에 대한 침해는 2018년 대비 2.8%, 불법구금은 5.4% 각각 증가하였다. 이는 북한이 정권 안정을 위해 사회질서와 치안 유지를 강화해 처벌강도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단체는 분석했다.

북한 여성들이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한변이 개최한 ‘북한여성 성폭력 사례와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탈북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겪은 일이 ‘성추행’이었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으며 북한에선 여자들의 몸을 만지는 일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이 잘못된 일인지도 몰랐고 북한에선 성추행‧성폭행에 대한 인식과 처벌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만들어진 북한인권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 제10조에는 북한인권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하게 돼있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북한인권재단운영 기금은 2018년 108억원에서 2019년 8억원으로 삭감했다. 또한 북한인권에 관련한 정책 자문위원회와 국제적 협력을 위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의 자리도 공백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한인권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06.04.[뉴시스]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한인권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06.04.[뉴시스]

 

북한인권법 ‘유명무실(有名無實)’...정부는 “검토 중”

2016년 북한인권법이 시행되고 외교부는 북인권국제협대사에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추천했지만 2017년 정부가 바뀐 이후 2년 이상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한 미국무부도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증진의 국제협력을 담당하는 자리가 공석인 점을 지적할 정도다. 

북한인권법 제9조에 따르면 대사의 임무자격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임명 가능함에도 아직까지 명확한 이유 없이 임명이 밀어지고 있다. 인적교류정보교환등과 관련하여 국제기구 국제단체 및 외국 정부 등과 협력하며 북한인권증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외교부에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두도록 되어있다. 

북한인권재단 설립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일부는 2016년 서울 마포구에 재단 사무실을 설립했다. 그러나 국회의 이사진 추천 갈등으로 인해서 제대로 구성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21개월간 파행적으로 외형만 유지했다. 총 12억원 규모의 임대료를 사용, 추가적인 재정 손실을 막기 위해 결국 계약을 종료하고 철수를 결정하였다.  

북한인권법 제10조에는 북한연구재단의 설립에 관한 법률이 명시돼있다. 1항에 의하면 정부는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인권대화와 인도적 지원 등 북한인권 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에서는 이사진 추천의 논의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재단에 대한 예산을 삭감했다.

정부는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립했다. 지성호 의원에 따르면 2017~2018년 북한인권 침해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이를 3급 기밀로 분류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정부 눈치를 보는데 급급해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이 나오자 2019년 결과 보고서는 공개용과 비공개용을 나눠 펴낼 방침으로 대응했다. 

일요서울은 지난 24일 25일 이틀에 걸쳐 담당 기관에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임명문제와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발간된 자료가 있는지 문의하였다. 대사의 임명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발간된 자료에 관해서는 담당자의 부재로 인해 현재 답변이 어려우며 추후에 입장을 전해 주겠다는 입장을 전하였다.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5일 오후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당하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위반된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2018.05.05.[뉴시스]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5일 오후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당하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위반된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2018.05.05.[뉴시스]

 

정부, 북한인권법 파행 이어 유엔 결의안 ‘불참’

앞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북한인권법의 핵심 조항들은 파행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의 경우 현행법에 따라 운영됐어야 한다. 북한인권재단도 예외가 아니다. 이사 추천권은 국회에 있지만, 이 또한 무관심 속에 방치돼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북한인권기록센터도 지성호 의원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동안 법조계에서 북한인권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온 한변은 북한인권법이 사문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할 뿐 뚜렷한 행동의 변화가 없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북한 인권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외교부는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에는 변화가 없으며 한반도 평화 번영을 통한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소명했다. 북한의 인권침해 규탄과 책임자 처벌 등이 담긴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 2003년 유엔에서 처음 채택됐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열린 제43차 회의에서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정작 직접적인 당사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포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수잔 숄티 대표는 이날 미국의소리방송(VOA)에 출연해 “한국보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더 큰 도의적 책임이 있는 국가는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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