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이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청원 글이 올라온 지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기회의 ‘공정’과 ‘정의’에 반하여 국민을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던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발 사태”와 “조국 사태”에 이어 소위 “인국공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규직으로 청원경찰 공고 내봐라. 당연히 경쟁률 박터지지”라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의 비판부터 심지어 “현 정부 노동정책의 부작용 종합판”이라는 유명 대학 노동대학원장의 혹평까지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현장의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는지 책임 당사자인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용역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분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장기적으론 청년들이 갈 기회도 더 커질 것”이라면서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청년층에 불리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취지로 항변하다 뭇매를 맞고 있다. 범여권 인사들도 여당인 민주당이 청와대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당론을 공식화하지 않고 미적대는 사이, “잘한 일이다.”, “오해가 많다.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두둔하다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논란은 ‘노노(勞勞) 갈등’ 차원을 넘어 청년과 청와대가 갈등하는 ‘청청(靑靑) 갈등’ 양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화들짝 놀란 청와대와 인천공항공사 측이 이번 정규직화 추진이 올해 채용계획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취준생에게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결국에는 신규채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한 국민의 분노가 ‘조삼모사’ 같은 설명에 쉽게 가라앉을 리 없다.

흔히들 이번 ‘인국공’ 사태의 한복판에는 ‘20대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과연 단순히 청년 세대만의 분노가 핵심 원인일까? 현 정부 들어 노동의 안정성과 유연성의 조화나 기득권 강성 노조 문제 등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노동개혁 이슈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신 ‘최저임금’ 이슈와 ‘노동시간 52시간 단축’ 등 소위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라는 국정 기조에 집착한 나머지 ‘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취업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정부가 역점을 둔 ‘소주성’ 정책의 효과가 미약하자 정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성과 보여주기식’ 정책에 급급해 정작 구직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공정’의 이슈를 중시하는 청년 세대의 목소리와 이를 우려하는 부모님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다.  좀 더 거시적이고 큰 틀에서 국민의 누적된 심리적 박탈감 등의 핵심을 살피지 못한 채 미봉책처럼 내놓은 청와대의 해명이 공허해지며 ‘로또 취업’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이유다. 

“보이는 것이 보여지기 위해 보이지 않는 영역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인기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 가운데 한 구절이다. 과연, 보이는 사람만 더 돋보이도록 나머지는 희생하여 ‘잉여인간’이 되는 게 우리가 꿈꿔 온 공정한 세상인가.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와 비정규직의 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심금을 울렸던 ‘구의역 김군’을 그리도 강조했던 정부 아니던가.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역차별.” 대통령 취임사를 패러디한 비판 구호들이다. 평등한 기회를 위해 인천공항공사 이외의 많은 공기업들과는 왜 공론화를 못했을까? 과정의 공정을 위해 미리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현장 목소리에는 왜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 결과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소외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왜 배려하지 못했을까? 

“대통령 찬스를 써야 정규직도 된다”라는 자조 섞인 비판. 이제라도 세밀하게 귀 기울여 주시라. 취업의 그 날만을 꿈꾸며 오늘도 밤을 지새는 수많은 ‘장그래’와 ‘구의역 김군’들의 피와 땀이 더이상 ‘부러진 펜’으로 남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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